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47
그것이 바로 미국의 오늘로 키워온 초석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나의 조급증에 대한
자숙을 해보기도 한다. 이곳은 9.11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센터 폭파사태 같은 인위적인 파괴행위나 지진이나 해일,
또는 토네이도나 폭풍우로 인한 산사태 같은 천재지변으로 막대한 재산과 인명 피해를 겪기도 하지만 한국의 삼풍
백화점이나 성수대교처럼 순전히 인재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대형 사고는 일어나는 일을 본적이 없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1930 년대에 지은 건물이고 이 집에서 살아온 것이 벌써 만 이십 년이 되었다. 칠십
년 정도가 된 집이어서 구조상으로는 좀 답답하고 디자인 자체도 구닥다리 같지만 공사 자체로 인하여 문제가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습기가 차거나 빗물이 새는 일도 없었고 기초가 허름하여 벽에 금이 가거나 바닥의
균형이 어긋나지도 않는다. 조그만 단독주택에 방 몇 개를 증축하면서 오십 층 백여 층이 넘는 대형건물의 공법과
비교 한다는 것이 좀 그렇기도 하지만 한번쯤 생각에 잠기게 된다. 작은 일 하나 완벽하게 처리를 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더 큰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아주 작은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어떻게 큰 문제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증축을 시작할 때는 그들이 제시한 공사기간에 대하여 다소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륙 개월이 아니라 일 년이 걸린다 해도 불평을 같은 걸 하지는 않고
순서와 절차를 따르며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고 쓸 수는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좁은 바늘구멍에 실을 끼기가 힘들고
귀찮다고 하여 실을 바늘의 허리에 묶어서 바느질을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테면 아무리 급하고 힘들며
귀찮다 하더라도 정해진 계획과 순서에 의해 차례대로 진행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바늘구멍에 실을 끼는 정도의 노력이나 참을성도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니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 같다고나 할까. 기초공사나 기둥을 세우는 순서를 건너뛰고
지붕부터 올리려는 무모함을 깨우치지 못한 채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빨리빨리’라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도 하다. 이제
와서 벗어나기 위해 안달을 할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이 육십이 넘게 지녀온 타고난 성격을 하루아침에
뜯어고친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러나 이제부터 조금씩이라도 무언가 달라져야 할 것만
같다.
좋지도 바르지도 못한 습성은 버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심사숙고하며 치밀한 계획아래 순서에 의해
진행을 하더라도 어긋나는 일이 수없이 일어나는데 어찌 방향감각도 잡지 못한 채 막무가내로 덤벙대며 뜀박질만
해왔는지 모르겠다. ‘빨리빨리’라는 게 내 성격의 기본이라 친다면 이제는 그 ‘빨리빨리’가 단순한 시간적인 의미의
개념이 아니고 계획과 순서아래 새롭게 도전을 하고 쉼 없이 노력을 해야겠다는 의미로 방향을 바꾸어 새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