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41

이년 전 조기유학생으로 온 십 학년짜리 여고생이 우리 집에서 홈 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부모는 모두 한국에 있는데 방문 비자로 미국을 방문했다가 이민 변호사를 통해 학생 비자로 바꾼 유학생이었다. 하학후 집에 돌아올 때면 스타벅스의 빈 종이컵을 들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도 스타벅스라는 데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때였다. 나는 아마 시대를 거꾸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는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가 보구나.”라 했더니 “나는 한국에서도 스타벅스 커피만 마셨는걸요. 다른 커피는 못 마시겠어요.”라며 기염을 토한다. 덧붙여 모카커피나 카푸치노, 비엔나, 아이리시 또는 카페 에스프레소 등 나로서는 모두가 생소하기만 한 여러 가지 종류의 커피이름을 늘어놓기도 하는 것이었다. 빈 컵. 커피 점에서 마시다 남은 것을 가지고 나오며 마저 마시기 위해 그 컵을 들고 나올 수도 있었을 게다. 다 마시고 나니 빈 종이컵을 버릴 데가 없어 집에까지 들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집안에는 각 방마다 쓰레기통이 있는데 왜 버리지 않고 책상 위에 모셔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니 그 빈 종이컵이 두 개로 세 개로 늘어났는데도 버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속으로는 녀석이 게으른 탓이려니 생각했었다. 그 나이에 설마 그럴 리야 있었을까 마는 요즈음 떠돌고 있는 말, ‘된장녀’가 되기 위한 연습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빈 커피 잔 하나를 가지고 자기의 격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변에서도 그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리라. 명품만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예이기도 할 것 같다. 이는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다를 바가 없나 보다. 오래 전 테네시 주에서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웃에 사는 젊은 흑인 세 명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캐딜락 승용차 한 대를 사는 경우를 본 일이 있다. 캐딜락 한 대의 가격이면 값이 싼 세 대의 소형차를 살 수도 있는 금액은 됐을 것이다. 이 차 한대를 이들 세 사람이 며칠씩 번갈아 가며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 같으면 차의 종류나 지명도 보다는 각자의 생활에 편리한 쪽을 택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교통수단으로 각자가 한 대씩 가지고 있다면 훨씬 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동차 한 대로 자기들의 신분이나 격을 높여 보이고 싶었던가 보다. 이 같은 사람들에게 ‘된장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된장.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고향을 느끼게 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 것이 어쩌다가 허영이나 사치의 상징이기나 한 것처럼 이용되는 데까지 오게 되었을까. 요즈음에 들어 어쩌다 된장찌개를 먹게 될 때면 ‘된장녀’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그 오염의 도가 나의 정신세계에까지 번져오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시중의 각종 음료보다는 우리 식의 식혜나 수정과도 좋고 찬 물에 미숫가루를 탄 것도 좋아한다. 국적이 불분명한 각종 수프보다는 된장찌개가 입맛을 더 돋우고 있는 나의 입맛은 이곳에서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도 달라지지가 않는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이 1895 년대였다고 하니 백 년 하고도 여러 해가 지났다. 이 커피가 우리나라의 전통음료중의 하나라고까지야 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익숙해져 있기도 할 게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한다면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 됐지 유명상표의 로고를 앞세우며 자기의 인격을 평가 받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 것도 자존심이라는 것이며 자기의 진면목을 대시할 수 있는 ‘로고’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된장남’이라는 말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구이든 간에 된장 본래의 맛을 음미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치와 허영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야말로 수더분하고 순진무구한 그런 모습의 ‘된장녀’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우리 전통식품의 하나이며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한 된장이라는 말을 이런 사람들 앞에 덧붙여가며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