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40

된장녀
아마 우리 마누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려니 생각했었다. 된장녀. 이름부터가 약간 촌스럽기는 하지만
구수하게 느껴졌다. 마치 고향의 품속 같은 느낌이 들거나 여자라는 뜻의 <여>자 앞에 붙인 ‘된장’이라는 말에서
무언가 수더분하고 때가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시골여인의 모습을 연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정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세 글자를 대하면서 왜 하필이면 마누라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는 걸까. 사실이지 마누라가 된장찌개처럼 구수한 맛을 풍기고 있다거나 순진무구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혐오스러울 만큼 까질 대로 까진 그런 여자도 아니고. 순진하다기보다는 투박스럽고 어떤
때는 무대포식인 아내의 촌스러운 면이 떠올라서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화장품 가게를 지나치다가 공짜로 주는 화장품 샘플을 하나를 받아 들고 횡재를 만난 듯 좋아하는
여자다. 소위 말하는 유명상표의 화장품회사에서 프로모션용으로 나온 것이니 품질도 정품과 똑같이 좋을 것이라며
해해거리는 여자이기도 하다. 평소 세이본스나 라이트 에이드 같은 드럭 스토어 같은 데서 비싸지 않은 로션이나
립스틱 같은 걸 사 쓰던 사람이 공짜 샘플일망정 유명 화장품을 쓰게 되었다는 게 좋아서였을까. 하기야 이 여자는
소위 말하는 명품이라든지 브랜드 이름 같은 것에 환장을 하는 여자는 아니다. 설마 이 정도의 명품 샘플 하나를
가지고 자기의 격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도
공짜라는 그 자체가 그녀를 그토록 이나 좋아하게 해주고 있을 것이리라.
아내는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다. 건강에 좋고 나쁘다는 말들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고멧 커피나
유명브랜드의 고급 원두커피 같은 것만 찾는 것은 아니다. 그저 커피면 되는 여자다. 집에서 쉬고 있는 날이면
집안에 커피향기가 풍기는 날이기도 하다. 이런 날은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덩달아 한잔쯤 마시게
된다. 그러나 나의 커피는 아내가 일차로 걸러낸 다음 다시 물을 부어 이차로 걸러낸 이를 테면 재탕이다. 아내의
커피도 그렇게 진한 편은 아니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연하게 마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커피와 물의 비율로
만들어진 것이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색깔은 보리차보다 약간 진할 정도이다. 나는 외식을 하거나
커피숍에 가게 될 경우 커피를 주문하는 일이 거의 없다. 커피에 관한 한 이렇게 길들여진 내 혀끝의 간사 함
때문이다. 그런 데서 마시는 커피는 나에게는 너무 진하다.

마치 쓰디쓴 한약을 마시는 것과 같다. 마지못해

커피를 주문해야 할 경우는 커피 외에 뜨거운 물 한 컵과 별도의 빈 잔을 청해야 한다. 물을 섞어가며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요즈음은 커피 한잔을 마셔도 ‘전문점’만을 찾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가까운 곳의 커피숍을 제치고 차를 타고
나가면서까지 굳이 그런 데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커피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맛으로만 길이
들여져 있어서 다른 것은 마실 수가 없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은 맛에 대한 감각이 무뎌서인지는
몰라도 커피는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은데. 어떤 브랜드의 맥주를 마시던 그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편단심 똑같은 한가지만을 찾는 사람과 비슷한 경우 일 게다.
스타벅스라는 커피 전문점이 뜨기 시작한 것도 한참 되었다. 몇 달 전에 나도 그곳을 가본 일이 있다. 그런
커피 전문점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가보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곳에 가게 된 것은
거기에서 손님을 만나기로 돼 있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