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37
얼마 전 뒤뜰에서 이십여 가정이 방문한 모임이 있었다.
아이들도 동반한 가정도 여럿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저녁이 되니 기온이 선선해져서 부모들은 집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얼마 후에 뒷마당에 나갈 일이 있어 나가봤더니
‘세상에 이럴 수가......’라는 말밖에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펄 벅의 대지에서 본 것처럼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뒤의 황량한 벌판을 바라다보고 있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손에 닿을 정도의 높이에 있던 아보카도는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많은 아보카도를 싹쓸이로 훑어낸 아이의 엄마에게 “아직 어려서 아무 데도 쓸 데가
없는데요. 아직 자라려면 몇 달이 더 걸리고 12 월쯤이나 돼야 먹을 수 있게 되는데......”라고 말했더니 “그래요?”
하며 다른 아무 말도 없이 그 아보카도를 쓰레기통에 쏟아버리는 것이었다. 나에게 미안하다거나 아이에게
나무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어찌 보면 하찮은 나무 열매 몇 개를 두고 마음 아파하는 내 소견머리가 좁디 좁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은보화보다도 중히 여기며 정과 애착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애지중지하던 시계나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고급 만년필을 잃어 버렸을 때도 이렇게 마음이 쓰리지는 않았었다. 이튿날
하릴없이
쓰레기통을
뒤집어
놓고
버려진
아보카도의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다. 마치
죽은
자식
무엇
만지듯. 84 개였다. 집에 돌아온 아내에게 “84 개더라.”고 했더니 “할 일도 없나 보네. 그딴 걸 세고 앉아있게”란다.
이러한 아이들이 우리 집을 또다시 찾아온다 해도 반가워 할 수 있을까. 또 이렇게 방관하고 있는 그들의
부모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우리 집에는 멕시칸 아이들도 백인 아이들도 그들의 부모와 함께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일로 신경을 곤두세우며 마음 졸여 본 일은 없었다. 그들 부모도 자기 아이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
까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아마 어려서부터 가르침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길가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참새에게 돌팔매질을 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남으로부터 피해 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미국식 개인주의의
바탕이 굳게 다져져 있어서 일까. 한번쯤「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남으로부터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