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36
남으로부터도 사랑 받는 아이
자기 자식 사랑스럽고 예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자식 사랑에는 어떤 이유나 조건 같은 것도 따르지 않을
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자식사랑에 대한 최고의 표현일 것 같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어디에서든 기죽지 않는 떳떳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라는 젊은 부모들을 자주 보게 된다. 사랑스러운 자기
아이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 있고 떳떳한 모습으로 보여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게다.
이들 젊은 부모들은 자기네가 어릴 때 부모에게서나 주위의 어른들을 비롯하여 학교의 선생님들로부터도 들어온
말로는 “하지 마”라든지 “안 돼”라는 말밖에는 다른 기억이 없는 것 같단다. 숱한 제재 속에서 자라온 자기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고쳐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열을 올리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 나서면
주눅이 들기도 하며 매사에 망설여지고 머뭇거리게 되어 답답해 질 때가 많다고 한다. 성인이 되고 아이들의
부모가 된 지금에도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창의력도 없는 것은 아마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탓일 것이라며
자기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는 키우지 않겠단다.
지난날 가부장적 가족제도나 관습에서 가장 위주의 집안 분위기 속에서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함부로 입을 뻥끗하거나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행동은 물론 생각을 하는 것까지도 한정된
울타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가정에서의 모든 일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계획되고 행하여지는 듯
한 요즈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하지 못할 일이 없으며 아이들에게 “안 돼”라든지
“하지 마”라는 말이 통하기나 할 것인지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가정의 위계질서는 식사를 할 때 식탁에서도 엄격히 구분돼 있었던 것 같다. 제일 아랫목에는 아버지, 그
주위로는 장남, 차남 등의 순서로 자리가 배치되고 밥상에서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메뉴의 순서도 아버지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부터 놓는 것이 상례였다. 내가 후에 자라면 식탁의 민주화부터 실천 하겠다는
의지가 생길 만큼 고깃점 한번을 집기 위해서는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용기를 내어 가까스로 젓가락을
돌진시켜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즈음의 젊은 부모들이 베풀고 있는 자식사랑의 방법은 어떠한가. 자기 자녀가 구김살 없이, 기죽지
않고 떳떳하고 대담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로서의 바람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나의 자녀」가 「남으로부터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아이」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를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원하거나 하려고 하는 일은 좋던 나쁘던, 옳던 그르던 상관없이 무엇이든지 OK 인 것처럼 방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의 집에 어린 자녀와 함께 방문을 했을 때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는 정도는
“아이들 다 그렇지”라며 봐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실에 들어가 베드사이드 테이블의 서랍을 열고
물건을 꺼내거나 컬렉션 도자기류를 떨어트려 깨트려도 수수방관하는 부모님의 자세가 관연 자식 사랑인 것인지
모를 일이다.
며칠 전 살을 깎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일이 아직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틈만 있으면
뒤뜰에 나가 자라고 있는 야채며 꽃 그리고 과일을 지켜보며 필요 없는 곁가지는 잘라 주고 잡초를 뽑아주며
비료와 물주기를 거르지 않고 있는 것이 내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 걸 이를 하던 아보카도가
금년에는 상당히 많이 열렸다. 많은 가지 중에 열매를 맺지 않는 곁가지는 잘라내며 열매가 매달린 가지만 남겨
놓고 있었다. 이제 밤톨만 하게 자라고 있어 년 말에는 상당한 수의 아보카도를 거둘 생각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여다보는 것이 낙이기도 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고 있었다. 이웃들, 친지들, 교우나 문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