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35
또한 없지 않았을 게다. 자기의 개인적 핸디캡으로 인하여 자기의 팀 동료가 얻을 수 있는 명예, 메달의 색깔을
바꾸거나 아니면 메달 권 밖으로 밀려나게 될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도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야박하고 살벌한 승부의 세계, 미국에서 여자 비치발리볼이라면 홀리 맥픽(Holly McPeak)와 일레인 영스(Elaine
Youngs)팀과 케리 월쉬(Kerry Walsh)와 미스티 메이(Misty May)팀을 꼽을 수 있다. 나는 평소에도 이들 두 팀을
좋아하고 그들의 게임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자주 관전해 왔었다. 홀리 맥픽과 케리 월쉬는 원래 한 팀의 동료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로 갈라져서 각각 다른 파트너를 영입하여 새 팀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 두 팀은 실력이나
기량으로 보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수준이어서 이번 올림픽에도 한 나라에서 동일종목에
두 팀이 함께 출전을 하게 되기도 했다.
평소에 나는 미국이 한국을 제외한 어느 다른 나라 팀과의 운동경기가 있을 때면 항상 미국 편에 서서 응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왜 이날 따라 호주 팀이 이겨줄 것을 바라는 마음이 들고 있었을까. 특이나 나탈리 쿡의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달라고 기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으니 웬 일이었을까. 나를 그렇게나 즐겁고
기쁘게 해주던 미국의 홀리 맥픽과 일레인 영스가 이날 따라 왜 이리도 얄밉고 야속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심하게는 악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있으니……. 미국 측에서 공격찬스가 생길 때마다 나탈리 쿡 쪽을
향해서만 스파이크를 강하게 내리꽂는 장면을 볼 때면 야비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아마 나탈리 쿡이 있는
자리는 빈 허당으로 여기고 있기나 한 것처럼. 올림픽 메달 하나가 그렇게나 소중한 것일까.
권투에서도 상대방의 어느 부위에 부상을 입게 된 후부터는 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려는 잔인함을
보이는 것은 이제 예사로운 일이다. 이것이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한다는 제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다. 이것이 올림픽 정신이고 스포츠맨십이라는 것이며 신사도라는 걸까. 회가 거듭될수록 상업주의화로
퇴색되어 가고 있는 듯 한 올림픽 정신, 비기는 경우도 있지만 이기고 진다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스포츠에서 인도주의라던가 인정과 애정이라는 것은 과연 사치스러운 장식물에 불과한 것일까.
시기와 장소, 당시의 출전 선수 이름이나 그 대회의 공식 명칭을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오래 전 모 메이저
그랜드슬램 국제 테니스대회 때의 일이 생각난다. 상대방이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의
일이다. 상대자는 빈자리를 찾아 강한 스매싱으로 득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강한 스매싱
대신에 넘어져있는 상대방 선수의 몸 쪽 근처에 아주 늦은 속도로 가볍게 공을 넘겨주어 넘어져있던 선수가 다시
일어나 공을 받아넘길 수 있게 해주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선수는 경기 도중에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결과는 그러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의 승리로 돌아갔다. 설령 이 선수가
시합에서 패배를 했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운 모습이 퇴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호주 팀이 기권을 하고 경기를 중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권투 경기에서처럼 주심의
판단으로 경기를 중단 시키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선을 다 한다 해도 결국은 패하게 될
것을 저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끝까지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스포츠맨십이고 올림픽 정신이라 한다 해도 저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무리를
한다는 것이 과연 바 람직한 것인가 싶기도 했다. 기권을 한다 해도 그들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은 미국 팀의 승리로 마감은 되었지만 중도에 포기를 했다 해도 호주의 나탈리 쿡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릴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탈리 쿡의 이러한 투쟁은 금메달이라는 올림픽에서의 최종
결과만을 생각하는 욕심에서였거나 결과에 대한 포상 때문도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갈고 닦아온 자기의
기량을 모두 발휘해 보려는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려는 안간힘이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성화의 불은 이미 꺼진 지도 오래된 지금 나는 나탈리 쿡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게임에서의 승리보다 더
위대했던 그녀의 정신력, 최선을 다하려 불편한 몸을 사리지 않던 투혼, 나의 좁다란 가슴속에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주었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비록 게임에서는 패배를 했지만 보다 값진 그녀의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