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30

젊은 할아버지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나들이를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하철을 탈 때 들어가야 할 입구와 승강장을 비롯하여 갈아타야 할 역 이름과 출구 또는 차선에 대하여 미리 확인을 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엉뚱한 출구로 들어가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가다가 되돌아 와야 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날 밤도 매표구에서 삼십 대 중반의 여직원으로부터 안내를 받은 후 출구로 나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을 하려 했던 때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매표소의 그 여직원이 소리를 질렀다. 돌아다보니 주변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누구를 부르나 싶어 뒤를 밤 열 시가 넘어서인지 지하철역에는 오가는 사람들이라고는 설마 날더러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계속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그 여직원이 헐레벌떡 뛰어 나오며 “할아버지”를 다시 불렀다. 소리쳤다. 역사에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뿐인 상황에서 더 이상 모른 척 하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가선 그녀는 또다시 나를 향해 “할아버지”하고 불렀다. 가시고 뒤를 돌아다보니 또다시 “할아버지”라고 있는 나가세요”. 거예요. 밖에 나왔다 들어가시려면 “할아버지, 그쪽으로 가시면 안돼요. 표를 다시 사야 되니까 이쪽 나들이에 나선 한 시골영감의 미덥지 않은 몸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영감답게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젠장, 또 야속했다. <할아버지>란다. 불과 몇 분 동안에 대 여섯 통해 돌아서 난생 처음 서울 나는 진짜로 촌스런 시골 “조심해서 가세요. 할아버지” 번 이상을 할아버지라고 그녀의 친절이 감사는 했지만 ‘할아버지’를 연발하는 그녀가 얄밉기도 했다.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반대 방향으로 계단을 내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유리창을 통하여 보고 있었던가 보다. 내 앞에 불러대는 그녀가 초 중고 학생들이 삼십 대 중반의 여인으로부터 계속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보니 내가 정말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돼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발 할아버지란 말은 빼 달라’고 청하고도 싶었지만 ‘이왕에 버린 몸’이라는 심정으로 체념을 하듯 부르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어설프고 감각도 무딘 나의 촌스러움을 노출하고 말았으니 이제 와서 ‘젊은 청춘’을 소리쳐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제까지 나는 내가 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과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일조차도 없었다. ‘할아버지’라. 할아버지라니.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다본다. 이제 겨우 육십을 넘기고 있는 날더러 얼마 전에는 전철에서 삼십 대 후반의 남자로부터 자리 양보를 받은 적이 있다. 황당해 얼굴이 확 붉어졌는데 이제는 나에게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서슴없이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호칭에도 닭살이 돋는 듯 한 느낌이 들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 나는 너무 <아저씨>라는 아저씨라는 호칭에 익숙해 져 갈만하니까 이제 할아버지라. 그것은 아마 반백도 넘어 밀가루를 뒤집어 쓴 것같이 하얗게 바래버린 나의 머리털 색깔 때문이리라. 노인들에게 가격 할인제가 있는 이곳의 식당에 가면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10% 정도의 할인을 받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