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8

보고 싶은 아이 한번쯤 만나보고 싶다. 내가 지금껏 그 아이를 잊지 못하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 게다. 그냥 잊지 않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수시로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마주치게 되고 생활주변에 그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나 일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리라.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게 있어서일까. 나의 이러한 속내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는 못하고는 있지만 그 아이가 생각 날 때마다 혼자서 미소를 짓곤 한다. 어린 시절, 친척 뻘 되는 분의 사랑채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집 둘레로는 흙을 쌓아 올려 기와로 지붕을 올린 담이 있었다. 안채는 아주 넓은 땅에 지어진 커다란 일본식 건물이었다. 그러니까 한 지붕 두 가족이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 두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울안에는 이 두 가정 말고도 또 하나의 조그만 아이 하나가 있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는 있었지만 두 가정 중의 어느 쪽에도 속해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도 하나의 가정으로 친다면 한 울타리 안에 세 가정이 살고 있던 셈이 되겠다. 그 아이가 거처하는 곳은 방이나 벽, 또는 별도의 지붕도 없이 뒷간의 벽에 싸릿대로 얼기설기 엮어 칸을 막아 놓은 좁다란 공간이었다. 눈비 정도를 막을 수 있도록 볏짚으로 덮은 지붕만 있었고 드나들 수 있는 조그맣고 네모난 구멍 하나가 뚫려 있을 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들어가서 잠을 자는 데만 필요한 장소였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날이 밝으면 아무 때나 뛰쳐나올 수 있고 저녁이 되면 그냥 들어가 잠만 자면 되는 그런 곳이었다. 가난한 공무원인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이끌고 이 사랑채로 들어온 것은 해방이 된지 얼마 후부터였다고 한다.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칠 남매와 할머니까지 부양해야 했던 아버지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막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였다. 삼대, 열 식구가 살고 있는 손바닥만한 방 한 칸. 잠을 잘 때 다른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 자는 머리의 위 부분과 발의 아랫부분에 있는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로 가로질러 누워서 자야 했던 일이 생각난다. 이런 상황에서 끼니인들 제대로 때울 수가 있었을까. 배급으로 타온 수수와 옥수수가 섞인 잡곡으로 지은 밥일지언정 양이라도 충분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감생심 군 입정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샘물을 떠다가 사카린을 타서 마시는 이웃을 바라다보며 침을 흘리던 기억도 생생하다. 무언가 먹고 싶으면 들판에서 싱아(신맛이 나는 풀)나 소나무의 연한 순을 따먹기도 했었다. 안채의 친척은 넉넉한 편이었다. 주인은 우리 아버지와 사촌간인데 그 당시 서울시 경찰국의 고위직 간부였다. 안채의 부엌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어린 나의 위장을 요동시키기에 충분했었다. 나와는 육촌이 되는 안채의 자녀들의 입 속에서 오도독 오도독 쌀강정이나 전병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던 나. 행여나 부서진 쪼가리라도 건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으리라. 이러한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도 못했었던 가보다. 나는 부모님께 “나도 저런 거 사 주세요”라든지 “무엇 좀 달라”고 조르며 보챘던 기억도 없다. 졸라본들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이럴 즈음 나는 지금껏 잊지 못하고 있는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살아 있다면 그 당시의 내 나이와 비교해 볼 때 아마 예순은 넘었을 게다. 날렵하고 윤기 나는 몸매는 아름다웠다. 의식주를 저 혼자 스스로 해결을 하는 아이 치고는 포동포동한 몸매에 건강미까지 흘렀다. 아침에 일어나면 혼자 나와서 뜰을 휘젓고 다니며 배고프면 스스로 찾아먹다가 쉴 때가 되면 자기만의 공간에 찾아 드는 그런 아이. 어느 누구에게 또는 어떤 가정의 일원으로도 속해있지 않고 매사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강인함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욕심 같은 것도 없어 보였고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자기에게 부여된 환경과 여건에 불만 없이 순응하 며 버텨나가고 있는 그 아이의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부럽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를 하루에도 수 차례씩 마주치게 되었다. 어떤 필요에 의해 약속을 해서였거나 보고 싶어서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각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며 가까운 곳 즉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만남의 동기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