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56
한국의 영화 와 드라마
“또 쓰러지겠네. 코리안 드라마에는 왜 저런 장면이 꼭 나와야 해?” 한국말이 서툰 작은 녀석이 어눌한
말투로 묻는다. 평소 나 자신도 생각해 오던 터이기도 하다. 드라마 내용 중에 무슨 충격을 받게 될 경우 손
을 뒷골에 갖다 대며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 응급실로 실려가는 장면들이다.
이런 장면이 한두 번 또는 그 이상 나오지 않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과연 얼마나 될까. 방 안에서 들
려오는 대화 중 숨겨온 충격적인 비밀 이야기를 문밖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들고 있던 접시나 찻잔이 담긴 쟁
반을 바닥에 쨍그랑 떨어트리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연기자의 연기력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때는 쟁반이나 접시를 떨어트리기 위해 일부러 손을 펼치는 모
습이 역력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 사고 장면도 그렇다. 다른 사람을 구하고 자신이 대신 중상을 당
하는 경우도 많다. 무슨 갈등이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상대방중의 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에
받혀 함께 있던 사람이 부축해 일으키며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서 이어오던 이야기의 줄거리가 묘하게 꼬이게
한다. 이 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의식을 잃거나 기억상실증세를 일으키는 장면은 빼 놓을 수 없는 공식이기라
도 한 것 같다. 의식이 없던 상태에서 회복의 신호로 검지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장면, 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가
게 하여 마치 의도적으로 방영횟수를 늘리기 위해 질질 끌고 가려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싸대기를 갈기는 일, 상대방의 얼굴에 컵에 담긴 물을 끼얹는 일, 소금을 뿌리는 일, 극중 인물
중 무슨 고뇌에 빠지거나 갈등이 있을 때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병을 비우고 있는 모습도 있다. 사무실이나 집
안에서 길길이 날뛰며 책상의 비품이나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두 손으로 뿌려 내치며 발광하는 장면들, 수틀
리면 방에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그고 침대에 몸을 던지는 장면들. 상대방을 궁지에 빠트리려 모함을 하거나
별의 별 못된 짓들을 골라하다가 결정적인 단서가 발각되거나 피하지 못할 상황에 다달으면 본의는 아니지만
무릅을 꿇고 용서를 빌거나 구걸하듯 이해를 바라는 장면도 한 드라마에 몇번씩 나오기도 한다. 요즈음엔 친
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하는 일도 단골 메뉴이다. 이제는 식상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재벌급 회사를 경영하는 부잣집 자녀와 가난한 집안 자녀간의 애정전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결혼조건
에 관련된 갈등 같은 것, 서로간에 진실된 사랑도 없는 관계인데도 당사자의 의중에도 없는 결혼을 성사시키
기 위한 당사자의 부모나 당사자중의 한쪽에서 벌리고 있는 줄거리로 삼는 작품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만취
가 되어 인사불성인 상태의 남자를 호텔이나 자기집 침실로 끌어들여 하룻밤을 함께 지낸것 같은 사건으로 질
질 끌고 다니며 벌리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젊은 연인
들이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평지의 풀밭이나, 눈밭 또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뛰어 달아나고 쫓아가다가 함께
넘어져 서로 엉켜 뒹구는 장면, 병원에서 누구의 사망 시 실려나가는 관을 붙잡고 몸부림치며 대성통곡을 하
다가 졸도를 하는 장면. 최근에는 이는 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봐오기 시작한 바로 그 무렵부터 반복되고 있는
장면들이기도 한데 이제 식상할 정도가 아니다.
그 충격, 애통, 감격 같은 장면들을 연기자의 눈빛이나 표정연기 또는 배경음악과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꼭 쓰러지고 넘어지고 떨어트려 깨트리는 것만이 상황설명이 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일까. 작가들 자신들도 자기 자신이 창작예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없는가 보다.
1950년대 학창 시절 때부터 지금까지도 지겨울 정도로 봐오고 있는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얼마
나 더 많이 봐줘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그만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요즈음에 들어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을 단골메뉴로 삼고 있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기나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는 단순히 검사를 한다는 한 컷의 장면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마다 펼쳐
지는 스토리 자체가 모두 다 거기가 거기인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게 현재 한국의 창작예술의 기본이 되고 있
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짜깁시식 스토리의 전개가 요즈음 영화나 드라마도 하나의 창작 예술로 여
겨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음악의 한 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