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54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엄마는 왜 나를 이런 델 데리고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일 세 살 된 언니만큼만 말을 할 수 있었 더라도 “엄마 빨리 집에 가자”고 졸라댈 수도 있었겠지요. 네 살 된 오빠만큼 걸음마를 할 수만 있었더라도 유모차에서 뛰쳐나와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겠고요. 설령 걸음마를 할 수 있었더라도 양 어깨와 다리의 가랑 이 사이까지 옭혀 묶여있는 안전벨트 때문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오직 몸을 비틀어대며 엄마에게 떼를 쓰고 우는 일일 수 밖에요. 며칠 전 저의 첫 번째 생일이었어요. ‘돌’이라고 하더군요.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삼촌, 고모 이모들도 모인 자리였어요. 또래의 친구 아이들도 있었고요. 맛있고 예쁘게 차려진 음식들도 많았 지요. 조그만 하고 예쁜 케이크에는 제 이름과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도 써 있었어요. 케이크에 꽂혀있는 촛대 에서 살랑대고 있는 조그만 불꽃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촛불에서 풍기는 무슨 과일냄새 같기도 한 향기 또 한 좋았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고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놀이도 좋았지만 케이크 위의 그 예쁜 촛불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촛불을 끄는데 저 혼자 힘으로 힘들어하니까 고모가 도와 ‘훅~’하고 불어 불을 끄던 일은 너무나 재 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지요. 수십만, 수백만은 될 것 같았어요. 각자의 손에는 종이로 된 컵 속 에 촛불을 하나씩 들고 있었어요. 먼 발치에서 보니 그 큰 도시에 흐르고 있는 촛불의 물결이 아름답게 보이 기도 하더군요. 한 밤중에 도시의 밤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이런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주고 있 는 엄마가 고맙기도 했었지요. 엄마는 계속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에게 더 가까운 자리에서 더 많은 구경거리를 자세히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많아졌습니다. 제가 타고 있 는 유모차가 이사람 저 사람들에게 부딪혀 덜컹거리거나 기우뚱거려 떨어질 것 같아 무섭기도 했습니다. 냄새 는 또 왜 그렇게 지독한지 숨을 쉬기조차 어려워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피켓을 든 사람들은 주먹을 쥔 손을 하늘로 뻗쳐가며 무언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무슨 띠 를 동여매고 있었습니다. 빨간 색이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몹시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고 무엇이든지 손에 닿기만 하면 금방 때려 부술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도 덩달아 주먹 손을 뻗쳐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 습니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무서워졌습니다. 평소에 봐 오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위해 보드랍고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여주며 맛있게 받아먹는 내 모습을 바라다보며 행복한 듯 미소 짓던 엄마. 나를 보듬어 안은 채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들려주던 엄마.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습 니다. 엄마가 지금 무엇을 원하며 소리를 높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소의 엄마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전처럼 나를 보듬어 안고 쓰다듬으며 뺨에 뽀뽀를 해 준다 해도 오늘의 이런 엄마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그 품속에서 쉽게 잠을 들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엄마의 젖을 물고 있으면서도 그날 밤 세종로 네거리에 서의 엄마 모습만 자꾸 떠오르게 되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촛불이 무서워 졌습니다. 엄마도 무서워졌습니 다. 송구영신 때의 촛불예배에서도 성난 관중들 틈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치는 사람들과 엄마의 모습이 엇갈려 떠오르기도 합니다. 촛불은 이제 초 중고 언니 오빠들, 대학생들, 근로자들, 교수들은 물론 심지어는 의원님들 까지도 애용하고 있는 놀이기구가 됐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이 거리에서의 아우성을 마치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 앞에서 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집니다. 우리 엄마의 평소 모습처럼 잔잔한 미소로 가족들과 어우러지는 행복한 저녁 한때를 보내게 될는지요. 이제 우리의 일상 생활 하나하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