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47
전화예절
한국에서 전화가 재산목록으로서의 가치로 인정을 받던 때도 있었다. 자가용 승용차는 고사하고 전화라도
있는 정도면 제법 괜찮게 사는 집안으로 생각될 때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도 그랬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
도 마찬가지였다. 전화 가입자도 백색과 청색으로 구분이 돼 있었다. 이중에 한 가지는 사고파는 것이 허용되
어 권리금까지 붙여서 팔 수도 있었으니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전화 한대라도 가질 수 없
는 형편이었지만 이런 일로 의기소침해 한 적은 없었다. 전화가 없는 집안이 있는 집안보다 훨씬 많았던 때이
기도 했었으니까.
회선을 늘려 가입자를 늘리겠다는 당국의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전화국에 달려가 가입신청을 한 적이 있었
다. 신청 하자마자 당장 전화가 가설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접수 순서대로 설치를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시간
이 가면 언젠가는 나도 마이 폰 시대에 살 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당한 금액의 가입비를 지불해야 했었다. 만일 중간에 취소를 하게 되면 그 기간 동안의 금리로 계산
된 이자까지 환불해 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전화라는 것은 나에게 당초부터 인연이 없었나 보다. 가입신
청을 하고 2년이 돼 가는데도 순서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국이민의 길에 올라야 했으니.
해약을 하러 갔더니 ‘앞으로 6개월 정도면 나올 것 같은데 이제까지 기다리시다가 해약을 하면 너무 아깝
잖아요?’라는 창구 직원이 얄밉기까지 했었다. 정확한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몇 만원의 이자까지 받고 나오
며 ‘흠, 그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