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42

표절시비 이곳의 한 문학 모임에 ‘낙엽을 태우며’라는 제목의 졸작 시 한편을 써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같은 제목, 같은 이미지의 글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이미 발표된 적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이런 글은 미 련 없이 버리라는 지도교수의 말을 듣고 당황해 하던 일이 생각난다. 나의 이 글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표절’ 이라던가 ‘모방’이라는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 자신은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키기나 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효석’,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메밀꽃 필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시였는지 수 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제목으로 쓴 이효석님의 이런 글이 있는 줄은 몰랐었다.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껍죽거리면서 이효석 같은 분의 이런 작품을 읽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 자랑거리이거나 변명이 될 수 는 없었겠지만 다른 여러 문우들 앞에서 망신스럽기도 하여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지도교수의 말대로 대담하게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졸필이기는 하지만 이 몇 줄의 시 한편을 쓰기 위해 밤잠을 포기한 채 머리를 싸매고 보낸 날들이 얼마였던가. 미련 없이 그냥 버리기에는 최소한의 대 담성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대수롭지도 않은 이 몇 줄의 글을 버리지 못하고 있 는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결코 남의 글 제목이나 이미지를 도둑질하지 않았다는 나의 결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미우나 고우나 다만 얼마 동안이나마 나름대로의 각고 끝에 탄생시킨 피붙이처 럼 무슨 애착 같은 게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티끌 하나라도 버릴 때면 한참 동안의 장고를 해야 하는 나의 쪼 잔 한 배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목도 바꾸어 보고 내용을 바꾸어 보려 했었다. 제목은 그냥 ‘낙엽’이라고 해보거나 ‘갈잎 타는 냄새’라고 고쳐보기도 해봤다. 내용면에서도 여러 각도로 시도를 해 봤지만 처음의 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한번 써놓은 글의 내용이나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며칠간을 끙끙거려 봐도 시원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잠시 덮어둔 채로 놔두기로 하고 시 간이 될 때마다 손을 보기로 했지만 이삼 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상태로 남아있다. 처음 쓸 당시의 그런 느 낌이 되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이 같은 가슴앓이는 결코 무슨 그럴싸한 걸작 한편을 남겨보겠다는 욕 심에서는 아니다. 단지 그때의 그 감정, 그 이미지대로의 글 한편을 완성시켜보겠다는 것이 고작인데 그 페이 지를 열어놓기만 하면 당시 지도교수님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고 이효석의 그 ‘낙엽을 태우며’라는 제목이 앞 을 가로막는다. 한국에서는 종종 표절시비로 언론이 시끄럽다. 연예계에서도 그렇고 정치권이나 사회의 지도자급을 포함 교수와 같은 지식층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들이다.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내기도 하며 변명도 하는 모습들을 바라다보고 있을라치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도 개운한 마음일 수가 없겠지만 당사자들의 마음 또한 어떠했을까. 이곳에서 내가 쓴 몇 줄의 글을 가지고 요란하게 구설수에 오르거나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없겠지만 이런 내가 이처럼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과 언론으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는 그들 당사자들의 고통은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이곳의 문인사회에서도 표절로 인한 자그마한 시비들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