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40
칼라 콤플렉스
브렌다. 병실의 화장실 안에서 나의 오른쪽 어깨에 키스마크를 남겼던 여자다.
브렌다는 본명이 아니다. 본명을 쓰지 않는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래 전의 일이었으
니 그녀의 정확한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어서 그냥 붙여놓은 이름이다. 그녀의 신상에 관한 기억이라고는 내
가 근무하고 있던 정신과 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로서 내가 맡고 있던 환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삼십 년도 훨씬 지난 지금 왜 갑자기 그녀가 떠오르는 것일까.
1977년쯤이었나 보다. 테네시 주의 컬럼비아에 있는 카운티 병원에서 NT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NT란
Nursing Technician의 약자로 미국 서부에서는 보조 간호원 (NA/Nurses Aid)에 해당된다. 정식 면허가 있는
등록 간호원(RN/Registered Nurse)만이 할 수 있는 투약이나 주사 같은 일을 제외하고 할당 받은 각자의 환
자들에 대한 일반 간호요원들과 똑같은 병상업무를 맡게 된다. 이를테면 혈압, 체온, 맥박 등을 재는 바이탈
사인 체크나 침상정돈, 목욕, 식사 등 자기 스스로를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이런저런 일들을 돕는
일들이었다.
정상적으로 배뇨를 하지 못하는 남자환자의 경우 요도에 튜브를 꼽아 배뇨시켜야 할 때는 내가 마치 그 분
야의 전문가이기나 한 듯 각 병동에서 나를 찾는 일이 많았다. 섬세한 동양인의 작은 손놀림이 믿어웠던지 의
료진은 물론 환자들까지도 내가 해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내가 맡은 환자의 차트도 쓰며 업무 교대 시 리포
트에도 참석한다. 이런 일을 하는데도 8주간의 교육을 받고 수료증(Certificate)을 받아야만 했다. 캘리포니아
에서는 이런 일들은 정식 간호원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때까지 병상업무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병원 자체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8주간의 교육은 받았
지만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아무리 허드렛일 같은 일이라도 실제로 환자를 대하게 되니 많은 긴장을 하게 되었
다. 병원 측에서는 나를 한 워드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이 병동 저 병동 옮겨 다니며 일을 하도록 했다. 병원
일에 익숙해 질 때까지 추가 일손이 필요한 병동에 보충하는 형식의 ‘Floating’ 요원으로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으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날의 환자를 배정받아 일을 하고 있는 중에도 “Mr. Park, come to the first
floor please”라는 구내 방송이 나오면 1층에 와서 도와달라는 뜻이니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브렌다라는
흑인 환자도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이다.
정신과 워드는 일반 병실과는 달리 환자의 상황에 따라 병실의 문을 밖에서도 잠글 수 있도록 돼있었다.
병실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