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38
진저는 가고 없지만
멋도 모른 채 이끌려 주검의 그림자가 어른대는 형장(刑場)에 들어서면서도 마냥 꼬리를 흔들댔다. 왜 이
곳에까지 오게 되었는지조차도 모르면서도 나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편했었던 것 같다. 마지막 작
별이 아쉬워, 아니 나의 이런 죄책감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 몰라 그저 제 얼굴이나 어루만지고 있는 나의
손등을 핥아주던 녀석. 몇 분 후면 주사 한 대로 세상을 마감하게 될 그 순간까지도 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을 게다. 12년 넘게 함께 지내오며 쌓인 정을 매몰차게 내다 버리려는 나의 거짓된 사랑을 끝내
저버리지 않았던 진저(Ginger).
내가 진저를 만나게 된 것은 녀석을 떠나 보내기 십이 년 전이었다. 대화 중에 어쩌다 내가 개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서울에 있는 거래처의 Y사장이 강아지 한 마리를 가지고 가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기
르고 있는 그의 진도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한 마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너무 좋아 계획 중이던 출장일정을
앞당겨야 했다.
생후 4개월이 된 강아지는 첫눈에 반할 만큼 귀여운 모습이었다. 쩍 벌어진 앞가슴에 쫑긋한 두 귀, 두툼한
발목과 동그랗게 말린 꼬리며 황갈색을 띄고 있는 전형적인 진돗개의 모습이었다. 이름을 짓기 위해 네 식구
가 머리를 짜는데도 며칠은 걸렸었다. ‘진도’라는 이미지를 담기 위해 첫 자는 ‘진’이라는 말을 넣어서 짓기로
했었다. 여자아이이니까 예쁜 이름을 지어주기로 하여 의견이 모아진 것이 바로 ‘진저’였다.
집안에 여자라고는 아내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제 이 집안의 구성원은 삼남 이녀가 된 셈이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두 아들과 진저까지 합하여 나온 수치이다. 여느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 집안에서의 사랑은
대개 막내에게 모아지기 마련이다. 이 집안의 막내 역할을 하고 있는 진저는 온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
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던 아내도 언제부터인가 눈을 뜨자마자 부르는 이름이 ‘진
저’가 되었다. 손등을 핥아도 상관하지 않고 목과 등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출근
을 하거나 퇴근을 할 때도 우선 찾는 것이 진저였다. 핥는다는 것은 사랑과 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 보다.
여느 때 같으면 아내가 출근이나 퇴근을 언제 했는지도 모르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 집에서 내가 사무
실로 쓰고 있는 방과 아내의 방이 있는 곳은 끝에서 끝에 위치하고 있어 거리가 제법 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