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32

미루나무 샛길을 뛰어다니다가 소 똥을 밟고 미끄러지며 깔깔거리던 일이며 보리밭 이랑을 헤집으며 깜부기를 따먹다가 입가에 수염을 그리던 일, 목화 밭 길을 따라가다가 목화다래를 따먹다 주인아저씨에게 들켜 군밤 세례를 받던 일도 맴돈다. 호밀 밭 사이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던 종달새, 벌거숭이로 물장구치던 냇물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산과 산의 계곡 사이로 흐르는 내를 막아 커다란 저수지로 바꿔진 둑에는 'XX 일보 주최 전국 낚시대회‘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이다. 고향이라고 찾아가 봐도 그전과 같은 감동이 느껴지지 않아 가끔은 외로운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한반도의 전 국토가 하나의 거대한 도시의 모습으로 바꾸어져 가고 있는 지금 누군가가 기다려주고 있을 것만 같던, 어머니의 품속 같던, 그러한 모습의 고향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아서 일까. 거대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나 현대화에 자동화된 생활의 이기를 즐기자고 찾아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일까. 암반에서 솟아오르는 물을 손바닥으로 받아 마셔보고 싶어지는 마음, 그런 모습의 고향만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초등학교 때 농번기 휴가 중 모를 심을 때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징그러워하며 떼어내던 시절도 그렇고 대보름 때 쥐불놀이와 장항선 철도를 경계로 한 아래뜸과 위뜸간의 돌싸움 같은 것이 지금도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고향이라는 걸 수박대가리 영감님의 나무지팡이와 비유를 해보기도 한다. 그분의 지팡이에 어떤 목적이나 의미 같은 것을 담고 있었을는지는 모르나 손에 닿지 않으면 허전했을 그 영감님의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무조건 좋은 것, 손때가 묻어 나무의 표면이 반들반들해질 만큼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나 한 것처럼. 고국을 떠나 사십 년이 돼가도록 해외에서 살아왔으니 햇수로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외지에서 살아온 셈이다. 또 한편으로는 나이로 따져볼 때 소위 말하는 철이 들 나이로부터 계산을 해 본다면 해외에서 보낸 세월이 훨씬 길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떠오르는 곳이 고향이니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아서일까. 가끔 ‘본국 지향형’ 운운하는 말들을 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나 경제, 사회 또는 문화부분에 관련된 대화 중에서 나오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나야 뭐 그런 분야의 사람은 아니지만 혹시 오늘 같은 날 고향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