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31
수박대가리
아직도 대나무 숲은 푸르렀다. 빼곡하던 낙엽송은 이제 거목이 되어 있었다. 장항선 철뚝 앞으로 놓여있는
수박대가리네
산엔
옛날의
그
소나무들로
가득하다. 팔목
굵기였던
잔솔들은
이제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있었다. 철뚝의 뒤쪽에는 해방 이후부터 지켜오고 있는 우리 집안의 조그만 선산이 있다. 그 산에도
소나무가 있고 낙엽송도 있으며 참나무도 있다. 그런데 선산을 찾아온 이 자리에서 하필 다른 사람의 소유인
수박대가리네 산에 시선을 모으고 있는 걸까. 모처럼 찾아온 선산에서 조상님들을 떠올리며 추억을 하거나
철뚝
너머의
옛날
집터를
바라다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던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은데. 아래뜸(동네이름)에 있는 우리 집터에는 텃밭도 있었고 옆쪽으로는 작으나마 논배미도 있던 곳, 모시
밭 사이를 들락거리던 뱁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 나오던 곳이기도 했다. 수리조합이 생겨 이제는 물속에
잠겨버린 우리의 옛 집터가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순서일 것 같기도 한데.
세상을 떠난 지도 수십 년이 지난 그때의 그 영감님이 방금 뒷짐을 지고 돌담 곁을 돌아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그곳에서 ‘수박대가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욕심 사납고 불화 같은 성격에 고집 또한 당할
자가 없었다. 그분의 성이 ‘최’씨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짝꿍이
바로
그분의
손자라는
것을
알고부터였다. 사람들은
왜
그분을
수박대가리라고
불렀는지에
대하여는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분의 대머리가 수박같이 둥글고 반들반들하여 불러졌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분의 산이 둥근 수박을 반으로 잘라서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 왜 이런 호칭 같은 것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분은 항상 나무로 된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기보다는 들고 다닌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몸을 가누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다니기에 허전한 감이
들어서였을까. 지팡이는 걸어 다닐 때 뒷짐을 진 양손에 쥐어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고 지팡이 끝이 땅에
닿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니 그 지팡이는 무엇에 쓰기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하여 알 수가 없을 밖에.
동네 아이들이 그분의 산에 몰래 숨어 들어가 땔감용 솔가지를 자르다가 그분에게 발각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