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영보 수필3집] | Page 29
아빠의 와이프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신부 측과 신랑 측의 가족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씩을 거명해가며 당사자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소개를 하고 있었다. 신랑측 가족을 소개
하는 사람은 신랑의 여동생이었다. 이런 일은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날의 약간 특이했
던 장면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맴돌고 있다.
“이분은 저희 고모님”, “이 분은 엄마” “이분은 아빠”까지 소개를 하는 데까지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
나 마지막으로 여자 한 분을 소개할 때 “이분은 아빠의 와이프” 라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집안의 가
족관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의아했을 게다. 하지만 구태여 누구의 설명을 듣지 않고
서도 짐작이 갈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라고 부르는 분은 아빠라는 사람의 전처일 것이고 아빠의 와이프라
는 사람은 재혼을 한 현재의 아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소개하고 있는 딸과 소개에 거명되고 있는 그 세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는 그분들
의 얼굴 표정에 대한 단순한 흥미나 관심거리로서가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분들 멤버 중의 한 사람의 입장에
서였다면 어떤 느낌과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 딸의 입장이었으면 또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
다. 그 엄마와 아빠라는 분들을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나는 이분들을 소개하고 있는 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
고 있었다. 겉모습으로는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었지만 그 속 마음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지금 이혼이나 재혼이라는 것이 당사자들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이 경악을 할 만큼 엄청난 일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무슨 큰 이슈로 삼을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정서에는 이곳 미국사람들처럼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완전히 열려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겉보기에는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부부로서의 롤 모델로까지 여겨져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에게도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나 보다 하며 주위의 지인들
은 안타까워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각 동네마다 있는 리틀 리그 베이스볼 팀에 참여시켰었다. 아주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학부모들의 참여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연습 때나 리그전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에서 자기 자녀가 소속돼
있는 팀을 응원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자원봉사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들은 보기에도 좋았다. 여기엔
이혼을 한 부모를 둔 어린아이들도 적지가 않았다. 이혼을 한 부모는 새로 재혼을 한 부부가 함께 나와서 응
원도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자원봉사 활동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니까 한 명의 리틀리그 베이
스볼 선수를 위해 두 쌍의 부부, 즉 네 명의 응원자가 함께 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네 사람 중에 두 사람은 그 어린이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 어린이
의 친부모 중에 새로 결혼을 한 현재의 새 배우자는 그 아이와는 전혀 무관한 사이라는 뜻이 기도 하다. 그런
데도 열을 올려 응원을 하고 그 아이가 안타라도 치고 나가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하며 두 남편끼리는
하이 화이브를, 아내들끼리는 포옹을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속 깊이까지
는 알 수가 없겠지만 겉보기에는 친 자녀와 현재 배우자의 전실 자녀와의 차이가 있는 것 같지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처음엔 우리 식의 정서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었다. 자기 자신의 핏줄이 아니더라
도 현재 배우자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일까. 아니면 현재의 자기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상호 존중의 마
음에서 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 두 가지 모두가 합해진 것이기도 할 것이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지금은 이혼을 한다는 것이 마치 원수 지간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아니다. 이혼 후에도 서로 오
가며 만나는 것은 물론 재혼을 한 새 부부끼리도 스스럼없는 교제가 이어지기도 한다. 이혼의 사유는 많기도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쉽고 흔하게 내세우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성격차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것을
이혼의 사유로 내세우는 경우가 그렇게도 많은 걸 보면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다볼 때 그 성격이라는 것이 결
혼의 조건으로도 첫째쯤으로 꼽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찌 보면 모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