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맘 미세스 대디 [박영보 수필2집] 미스터 맘 미세스 대디 [박영보 수필2집] | Página 6

깍두기 담당 “이게 깍두기인지 물김치인지 모르겠네. 마치 동치미에 고춧가루를 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식사 때 어쩌다 밥상에 깍두기가 나오면 한국에 있을 때 즐겨 찾던 모 설렁탕 집이 떠오르곤 한다.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그 맛이 떠오르는걸 보면 현재 아내가 만드는 깍두기와의 차이 때 문일까. 우선 때깔부터가 다르다. 너무 잘게 썬 무는 무대로, 양념과 국물도 각각 따로 놀고 있는 아내 의 깍두기.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던 큼직한 크기의 무에 맛있게 숙성된 그런 깍두기 맛이 아니다. “깍두기 무의 사이즈가 마치 새모이처럼 자잘하다”거나 국물은 왜 이리 많고 양념은 따로 놀고 있는 지 모르겠다”고 말하면 “조그만 하니 먹기에 좋잖아.”라거나 “국물도 개운하고 맛 있잖아”라며 맞받아 친다. “그럼 아예 물김치를 담거나 동치미를 담지 그래” 라고 토를 달면 “그럼 자기가 해봐.”란다. 사실 그런대로 국물도 시원하고 먹을 만은 하다. ‘내가? 못할 것도 없지’ 라는 생각에 문인들의 모임에 다녀오는 날 마켓에 들렸다. 큼직한 무 두어 개와 양념 재료도 곁들여 사왔다. 아내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뒷문으로 들어와 뒤쪽 구석에 감추어 두 었다. 아내가 없는 동안 만들어 두었다가 적당히 익으면 내놓겠다는 일종의 깜짝 쇼를 위해서였다. 아침에 아내가 출근을 하자마자 작업에 들어갔다. 무는 큼직하게 썰어 일 갤런 짜리 유리병에 가득 채워 바다 소금으로 절여 놓았다. 한 병에 담을 분량의 무를 썰고 나니 반 개 분량의 무가 남아 이왕에 내친 김에 약간 굵게 나박 썰기를 하여 속성 동치미까지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절인 무에서 나온 물도 제법 많은 양이 되는데 면포에 걸러 동치미 국물에 섞어 사용하면 된다. 무를 구태여 바다소금으로 절 이게 된 이유도 내심 여기에 있었다. 무를 절이는 동안에는 양념장을 준비한다. 밤 늦도록 인터넷 검색에서 깍두기 담는 법을 찾아봤다. 뻔한 방법이겠지만 좀더 낳은 질의 깍두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와 있었지만 거의가 비슷하고 양념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아예 ‘내 식의 레시피를 만들어 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름의 양념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이다. 깍두기, 김치, 총각김치, 겉절이 등을 포함하여 갖가지 김 치 류의 양념을 종류별로 정리를 해봤다. 기본적인 양념은 모두 거기가 거기였다. 기본이라고 할 수 있 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새우젓이나 멸치액젓, 소금, 찹쌀 풀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을 섞어 절인 무 와 함께 버무리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그게 과연 ‘내 식의 레시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무언가 차별화를 두어야겠다는 생각. 하다못해 만드는 방법만이라도 간소화 해 봐야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 재료별 양념의 비율이나 분량은 기존의 방법에만 따르지 않고 수시로 간을 봐가며 우리의 입맛에 맞 추어가며 조절을 해갔다. 비린내가 심한 새우젓이나 멸치액젓 대신 피시소스를 이용했고 찹쌀 풀은 넣 지 않았다. 어쩌면 나중에 군둥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젓갈 류는 걸쭉한 맛을 낼 수도 있겠지만 상큼한 맛이 줄어들 것 같아서였다. 우선 기본 양념재료 모두를 블랜더에 넣고 아주 곱게 갈았다. 약간 의 생수와 피시 소스 같은 액체가 섞여서인지 보기에는 다대기나 양념이라기보다는 마치 케첩이나 샐러 드 드레싱처럼 곱고 보기에도 좋았다. 모든 준비가 완료 되었으니 이제 버무리는 일만 남아 있다. 모든 재료를 큼직한 대야에 쏟아 붓고 손으로 거추장스럽게 버무리려야 하는 종전대로의 방법이라면 하나도 새로울 게 없지 않겠는가. 소금에 절인 무의 분량은 사분의 삼 정도로 줄어들어 병에는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절인 국물까지도 비워내니 병의 공간이 조금 더 생겼다. 무가 병에 꽉 차 있으면 흔들어 믹싱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게 된다. 병 속의 절인 무에 양념장을 넣어 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