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맘 미세스 대디 [박영보 수필2집] 미스터 맘 미세스 대디 [박영보 수필2집] | Page 5

제 1부 아빠의 샌드위치 김치 이것이 빠지면 제아무리 잘 차린 식탁이라 해도 식욕이 떨어진다는 게 우리에게 길들여진 입맛인가 보다. 이것이 없이는 몇 술 끌쩍거리는 척 하다가 슬며시 수저를 내려놓는 이들도 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동행했던 K사장은 도착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난 그 다 음날부터 그곳 음식이 느끼해서 못 먹겠다며 한국식당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부를 통해 찾은 한국식당은 편도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왕복 백 달러가 넘는 택시비를 지불하면서까지 다녀와야 했다. 한국음식을 먹기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주 목적은 김치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도 김치를 즐겨 먹고는 있지만 한두 끼 먹지 못한다고 하여 못 견디는 편은 아니다. 이것 때문에 식사를 하지 못한다거나 식욕을 잃는 일도 없다. 사십여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는 배추나 무 또는 고춧가루 한 봉지도 구할 수 없는 동남부의 조그만 타운에 살았었다. 요즈음은 미국 어디에서나 구하거나 담글 수도 있지만 그때는 정말 김치라는 것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가끔 소금에 절인 양배 추로 김치를 대신하기도 했었다. 마치 백 김치나 동치미와 비슷한 맛을 내기도 하여 그런대로 먹을 만 했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내보다도 훨씬 많다. 밥을 짓는 일에서부터 반찬을 만 드는 일 또는 설거지까지도 거의 도맡아 하다 보니 느는 게 요리솜씨다. 터키요리나 로스트 비프 또는 스파게티 같은 아내가 뽐내고 싶어 하는 특별한 메뉴를 제외하고는 부엌일은 거의 모두가 내 몫이 된다. “요새는 부엌일 같은 것을 남자들도 도와줘야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집안의 내력인지 아버님이나 형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더니 이제 사 십대 초반과 삼십대 후반인 두 아들녀석들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혼 초, 아버님이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실 때도 손수 수산시장에서 사온 생선을 손질하여 끓이거나 지지고 볶고 하시는 일이 자주 있 었다. 이런 모습에 익숙해 있지 않아서였던지 시아버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하던 아내는 지 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부엌은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나의 조그만 놀이마당이기도 하다. 나는 요리에 상당한 관심과 취미를 가지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레시피를 모으기도 하고 TV의 후드 채널은 메모를 하면서까지 요 란을 떤다. 나름대로 개발한 나의 메뉴 중에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도 있다. “이거 아빠가 만든 거지?” 라며 평소에 없던 메뉴로서 제법 먹을만하다 싶으면 하는 아이들의 질문이다. 그러나 김치만큼은 영 자신이 없다. 그것만은 내가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 누구 집에 방 문하여 맛있는 김치를 먹게 될 때마다 요령과 비법을 물어와 그대로 시도를 해 보지만 그 맛이 아니 다.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대로 재료나 방법 또는 양념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