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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수절을 잘하는 과부 동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천자가 그 내가 <광문자전>에서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걸인인 광문의 절개를 가상히 여길 정도로 수절을 잘하는 부인인데, 아들이 다섯이고 그 대사.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그러나 남자만 그런 것이 아들 다섯은 모두 제각기 성이 다르다. 아니라 비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책을 이만 오천 권 펴낸 명망 높은 학자 북곽 선생은 그런 동리자와 광문은 스스로 못생겼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록 밀회를 즐기는 남자다. 과부와 밀회를 나누면서도 결코 점잖은 자세를 여자라도 못생긴 걸 싫어하긴 마찬가지’라며 남녀 평등적인 사상을 잃지 않는 그는 “저기 저 가마솥들은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냐”며 성이 내비친다. 미추에 대한 관점에서 여성의 시선을 인정하는 것은 당시의 다른 다섯 아들은 누구를 닮았냐고 풍자(라고 쓰고 수작이라고 읽는)하는 조선사회의 남성(줄여서 ‘조남’이라고 불러본다)들에게 결코 자연스러운 시를 지어 읊기도 한다.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내 주변에는 자신의 외모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예쁜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부르짖는 걸인 광문만도 못한 이들이 교과서에서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인물에 차고 넘치니 말해서 무엇 할까. 대한 비판’으로 설명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의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여성의 재가가 금기되는 사회였고, 인간의 본능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사회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보았을 때, 북곽 선생과 동리자는 사회의 제도적 불합리성을 과감히 버리고 인간적 욕구에 충실한 인물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허생과 호질 등의 작품이 실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는 이 책을 어쨌든 <호질>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보다 작품 곳곳에서 비치는 두고 ‘턱이 빠질 정도로 웃게 만드는 책’이라고 평가했고, 전에 없던 연암의 유머 감각이 더욱 마음을 끄는 작품이다. 꾸짖음이라면 나도 독특한 연암만의 문체는 선비들 사이의 대유행이 되었다.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만나서 소주 한잔하며 꾸짖음 배틀이라도 한번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물론 승산은 심지어 과거 시험장에서도 독특한 연암의 문체가 등장하기 시작하자 정조 없을 것이다. 382세를 어떻게 이겨요. 임금은 “요즈음 문풍이 이와 같은 것은 박 아무개(박지원)의 죄가 아닐 수 없다”며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로 문체가 이와 같게 되었으니 마땅히 문제를 만든 자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박지원을 꾸짖었고, 조선의 페미니스트 광문 속히 순정(純正)한 글을 지어 곧바로 올려보내 <열하일기>의 죄에 대해 속죄하라고 명한다. 반성문을 쓰도록 한 셈이다. 연암 박지원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의 캐릭터에서 드러난다. 고전 소설의 주인공들이 대체로 좋은 가문, 훌륭한 인성, 빼어난 외모와 문풍이 ‘순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성문을 쓰게 되었을 때 그의 심정은 실력 등을 두루 갖춘 것에 비해 박지원 작품의 주인공들은 전형적인 어땠을까. “못생긴 걸 싫어하는 건 여자라도 마찬가지”라던 광문의 재자가인(才子佳人)형 캐릭터들과는 거리가 있다. 말은 연암의 실제 사고방식과 얼마나 닮아있을까. 성이 다른 아들을 다섯씩이나 둔 수절 잘하는 과부 동리자가 내 눈에는 썩 능력 있는 <광문자전>이라는 작품의 주인공 광문은 형편없는 외모를 가진 걸인이다. 언니로 보이는데, 그분의 생각은 어떠할까. 글을 쓰고 보니 묻고 싶은 그러나 착하고 신의가 있으며, 남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것이 셀 수 없이 많고, 그와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욕구는 더욱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남의 싸움을 익살스럽게 중재하는 재치가 있고, 강렬해졌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으며, 분수를 지키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심지어 남녀평등 의식까지 갖추고 있어 페미니스트의 면모도 아, 그러고 보니 술 권하는 문화는 (당연히) 조선 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엿보인다는 사실. 왕이 술을 권해서 신하들을 ‘꽐라’로 만들었다는 기록도 전해지는데, 연암 박지원은 이러한 조선의 술 권유 문화에 대해서도 꾸짖었다.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머리를 땋고 다녔다. 남들이 “한 번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늘 주정과 난동으로 끝난다. 장가가라고 권하면,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선비들이 술 적당히 마시고 운치 있게 시를 읊는 술자리는 내 평생 한 그러나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번도 본 일이 없다.” 그러기에 나는 본래 못생겨서 아예 용모를 꾸밀 생각을 하지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시각 새벽 4시 4분. 오늘 밤에는 술 먹고 주정 않는다.”라고 하였다. 부리다 연암 선생으로부터 꾸짖음 당하는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가 살던 서대문에서 이 글을 쓴다. -광문자전 July 2018   m a x i m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