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심 문학관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선비 허생. 그러나 강력한 선비 정신으로도
수절을 잘하는 과부 이야기, <호질>
마누라의 등쌀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던 모양이다. 도둑질이라도 해오라는
아내의 바가지에 글 읽기를 중단하고 집을 나선 허생은 한양의 제일가는 연암 박지원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크게 드는
부자 변 씨에게 만 냥을 꾸어 나라의 과일을 모조리 사들인다. 얼마 안 때는, 소설에 드러난 그의 ‘꾸짖음’을 접할 때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가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어 꾸짖음으로 시작해 꾸짖음으로 끝난다. 작가의 목소리로 혼쭐을 내면
허생은 큰돈을 벌어들인다. 이후에는 또 망건을 만드는 말총을 전부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조선을 쥐락펴락한 뛰어난 문장가답게 자기 대신
사들여 같은 방식으로 큰돈을 벌어들인다. 꾸짖는 역할을 할 대변자를 참 잘도 빚어 놓았다. 허생전에서 허생과
허생의 처가 작가 대신 꾸짖는 역할을 한다면, 이 작품에서는 호랑이까지
이 같은 매점매석이 가능했던 건 과일값이 몇 배로 뛰든 무조건 과일을 나서서 인간들을 꾸짖는다. 제목부터가 ‘호질’. 호랑이의 질책, 호랑이의
사야만 하는 양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망건을 써야 한다는 예법을 꾸짖음이라는 의미다.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이들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연암은 이를
통해 조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법도에 대한 집착과 허례허식을 비판한다.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
(校訂)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 권이었다.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가상히 여기고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商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그 고장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미모의 과부가 있었다.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그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樊於期)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
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旌表)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자는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했는데, 슬하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을 달리하고 있었다.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어느 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지껄이기를,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닮았을까.” 하고 다섯 놈이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는데,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 대장은 놀라서
이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하고 간청하매, 북곽 선생은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
를 읊는 것이 아닌가.
- 허생
鴛鴦在屛(원앙재병)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경경유형) 반딧불이 흐르는데 잠 못 이뤄
법도를 따져가며 상다리가 휘어지게 제사상을 차리는 건 양반의 뿌리를 維心維錡(유심유기)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가진 집안인 양 과시하려는 문화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허생이 살던 云維之型(운유지형)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때로부터 3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허생의 꾸짖음으로부터 興也(흥야) 흥야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의 법도를 따져가며
제사상을 차리는 문화는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고, 여전히 모두의
명절을 흉악하게 만드는 주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북곽 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대. 저건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고 함께 의논했다.
-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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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