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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 FOOD
야, 그거는 참치마요냐?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참치는 아니지 말입니다.

전투식량이 이렇게?

그땐 싫었지만 지금은 그리운 전투식량 A to Z. by 문형철( 디펜스 21 기자)
군필이라면 전투식량 맛은 잘 알 테지만, 정작 전투식량의 유래는 잘 모를 거다. 어디 가서 아는 척 좀 해보라고 전투식량의 역사를 알려주겠다. 하루 종일해도 끝나지 않을 군대 얘기의 마무리는 당신 차지다.
고대 로마군의 전투식량 비스킷 현재까지 내려오는 가공식 전투식량의 효시로는 고대 로마군의 비스코티를 손꼽을 수 있다. 고대 로마군의 전투식량이던 비스코티( biscotti) 는 원래 바삭한 빵의 한 종류다. 비스코티는 빵처럼 밀가루로 반죽해 만드는데, 일반적인 빵과 달리 두 번 구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라틴어로 비스( bis) 는‘ 두 번’, 코티의 동사형인 코두스( cotus) 는‘ 굽다’ 라는 뜻. 오늘날의 비스킷이 바로 비스코티에서 유래한 거다. 비스코티는 물과 밀가루, 소금이 주원료로 요즘의 비스킷이 달콤한 것과 달리 짠맛을 띠고 있었다. 로마 군인들은 오늘날처럼 고상하게 우유나 차에 비스코티를 찍어 먹지 않았다. 메주처럼 딱딱한 비스코티를 물에 불려 먹거나, 오트밀을 푹 끓여서 죽처럼 먹었다. 그렇다고 로마 군인들이 비스코티만 먹은 건 아니다. 로마제국의 영역이 넓어지자 갈리아 지역에 살던 골족과 게르만 용병이 로마군으로 유입됐다. 자연스레 용병들의 식문화이던 염장 육류가 전투식량으로
유입됐다. 비슷한 시기 쌀과 콩 등 곡물이 주식이던 동양에서는 원시적인 시리얼이 전투식량으로 등장했다. 찐쌀을 말려서 뜨거운 물에 풀어서 먹거나, 쌀과 콩 등을 빻아 미숫가루 형태로 휴대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옛날에도 우리의 친구‘ 맛다시’ 와 같은 휴대 양념이 있었다. 베와 같은 섬유에 간장을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한 천을 물에 풀어 맛을 내기도 했다. 동양이라고 해서 전투식량으로 곡물류만 있던 건 아니다. 농경문화가 아닌 유목 민족은 말린 육포를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 중세 유럽을 공포로 내몬 몽고군의 주식이 바로 육포다. 그들은 휴대하기 편한 육포를 씹으며 무서운 속도로 진군했다. 습한 여름에는 오늘날 스시에 넣는 밥처럼 식촛물과 소금으로 간한 밥을 전투식량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사들은 균형 잡힌 영양을 제공하기 어려워 괴혈병과 같은 질병을 불러오기도 했고, 일단 맛이 극혐이었다고.
병 · 통조림, 그리고 현대화된 건빵과 별사탕 18세기 유럽에 불어닥친 산업혁명의 바람은 전쟁의 양상을 크게 바꿨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무기뿐 아니라 전투식량의 질도 혁신적으로 발전시켰다. 1804년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대에게 맛과 영양을 제공하면서도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전투식량을 보급하길 원했다. 그는 12,000프랑의 상금을 내걸고 새로운 전투식량 개발 공모전을 열었다. 공모에 당선된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 Nicolas Appert) 는 유리병에 조리한 음식물을 담아 코르크 마개로 덮고, 파라핀으로 밀폐해 비교적 장기간 음식물을 보관할
수 있는 이른바 병조림을 개발했다. 보관 기간이 긴 병조림 효과는 매우 컸다. 병조림은 프랑스군에 뛰어난 기동성과 원활한 보급을 제공했고,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게 만들었다.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이던 영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영국인 피터 듀런드( Peter Durand) 는 주석을 이용해 깡통을 만들어 통조림의 발명 특허를 냈다. 통조림은 장기간 음식물 보관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깨지기 쉬운 병과 달리 견고한 덕에 영국군의 식량 보급선은 프랑스군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이후 통조림은 각국으로 퍼졌고, 가정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됐다.
제 1 차 세계대전 당시 가정에 비축하던 통조림과 보존식품.
1 5 0 maxim July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