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비단 남녀 관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맺고 있는 수많은 여자에게는 역시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도 하나 있다. 그는 그녀의 역사를
관계에 붙은 이름 중, 그 관계는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샅샅이 지켜본 사람이다. 여자 자신은 이제 다 잊어버린 지난 고민도, 술기운을
관계는 하나도 없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집집마다 다르다. 어떤 부모자식 빌려 내뱉은 푸념들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 관계에는 친구라는 이름보다
간에는 더없는 존중이 오가지만 어떤 부모자식은 서로에게 내다 버리고 싶은 ‘목격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여자는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
존재이기도 하다.
여자에게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붙은 남자도 있는데, 여자는 그 남자와 지금껏
우리는 관계에 붙은 일률적인 ‘이름’ 탓에 이 관계는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고 단 한 번 만났다. 딱 한 번 만난 관계에 ‘부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리가
믿고 그 관계에 수없이 많은 기대를 품는다. 부모란 이름이 붙은 것은 나를 위해 아닐까 여자는 생각한다.
희생해야 하고 자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나의 뜻에 따라야만 하고 형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러해야 하고 친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러해야 한다고 ‘어머니’라는 이름이 붙은 여자도 있는데, 여자는 어른이 된 후 그녀와 자주 술을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다. 마시고 종종 함께 담배를 태운다. 따로 살며 가끔 같이 여행을 떠난다. 여자가
나고 자란 나라의 정서라는 놈을 생각하면, 이 관계에 ‘모녀’라는 이름을 붙이는
그러나 실상 두 사람의 관계에 붙은 이름은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것도 좀 무리가 아닐까, 여자는 생각한다. 오히려 아까 어디에 붙여도 어색했던
있지 않다. 그저 너와 내가 있을 뿐이다. 둘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든 관계는 그 ‘친구’라는 이름이 여기에 가장 어울린다고도 생각해본다. 그러나 물론 두
그저 ‘너와 나의 관계’일 뿐, 세상이 일괄적으로 규정해놓은 이름으로 여자가 친구인 것은 또 아니다.
특정될 수 없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에는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여자에게는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하나 있다. 그 관계에 붙은 이름은 그냥 세상에 각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J와 나의 관계로, H와 나의 관계로,
친구인데, 생각해보니 두 여자의 관계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르자면 ‘자매’ Y와 나의 관계로, K와 나의 관계로 생각하며, 그저 그 관계를 어떤 이름으로도
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한 사람이 힘든 일을 겪으면 같이 울어주는 것이 아니라 옭아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굳이 끌어안고
정말로 똑같이 눈물이 날 지경이 되니까. 하나가 불행하면 그저 안쓰러운 것이 부질없는 기대를 쏟아붓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라 나도 어느 정도는 같이 불행하다고 여겨지니까. 그렇다고 두 여자가
자매인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도, 어쩐지 그 여자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July 2018 m a x i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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