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와 섹스를 한다는 생각
은 전혀 못했습니다. 그저 민박이나 여관을 얻어
서 잠만 잔다는 생각을 한 거죠. 우리는 일찌감치
강변이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숙소를 정하고, 방에서 TV를 보며 한가로운 낮
시간을 보내고, 오후 4시쯤 술을 곁들여 이른 저
녁을 먹었습니다. 무척 추운 날이었는데, 그래서
인지 술도 잘 들어가더라고요.
저녁을 끝내고 나왔을 때는 이미 주위가 밤처
럼 깜깜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우선 늘
어지게 잠을 잤습니다. 추운 밤거리를 걷다가 갑
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온 탓이었겠지요. 새벽 2
시쯤 잠에서 깬 것 같습니다. 베란다 밖으로 달빛
을 받은 강물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꼭 시간을 조
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고요했고요. 커
피나 한잔 마시려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나를 끌어
안았습니다. 피곤함이 완전히 풀린 상황에서 섹
스를 하게 됐는데, 그와의 첫 경험이라는 것도 조
금 설레고, 섹스에 대한 예감 없이 급작스럽게 진
분위기 따라주는 겨울의 환경
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일산에 사는 친구와 친구
행돼서 그런지 마치 처음 섹스를 하는 것처럼 기
겨울이 섹스하기 좋다는 데에는 여러 가지 근거가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갔다가 나왔
분이 들떴습니다. 다음날 그가 확실히 내 사람이
있다. 우선, 12월은 1년 중 밤이 제일 길다. 퇴근
는데, 길이 너무 밀려서 두 시간을 운전하고도 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날 섹스
시간에 맞춰 회사를 나오면 바로 깜깜한 밤이다.
직 죽전이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내가 언제
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오후 6시에도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여름이라면
일산까지 가느냐며 우리 집에 하루 묵어가라고 했
7년 전 12월이었습니다. 연인 사이
커피나 간단한 저녁식사가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죠. 그랬더니 꽤나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는지,
였던 우리는 금요일 밤 원주에 갔습니다. 다음날
밤과 다름없는 깜깜한 겨울 저녁엔 술이 훨씬 더
그래도 되냐고 되묻더라고요. 당연히 되죠. 우리
치악산을 둘러볼 계획이었지요. 우리의 기대와는
잘 어울린다. 그것도 시원한 맥주보다 와인처럼
식구도 집안에 있는 게 심심해서 다들 죽을 것 같
달리 치악산 입구 숙박시설은 그리 쾌적하진 못했
따뜻한 술 말이다. 분위기를 잡는 데에는 아무래
았거든요. 그날은 눈도 와서 도로가 하염없이 밀
습니다. 등산객이 적은 겨울, 그것도 평일 밤에 찾
도 와인이다. 또 소주와 달리 여성들도 부담 없이
리던 날이었어요. 우리 가족과 친구 가족은 오랜
아간 탓에 사람들도 많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