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Magazine | Page 153

조금 더 수위를 높여서.
꼭 거기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동차는 우선 너무 좁다. 나는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뒤주에 갇힌 자세로 피스톤 운동을 반복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뒷좌석으로 옮겨가기는 좀 귀찮다. 포르노 영화에서처럼 둘 다 숨을 쌔근거리며 마치 각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뒷좌석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자, 이제 뒷자리로 가서 본격적으로...” 라는 식으로 끊기는 게 싫다. 덩치가 너무 커서 내렸다가 뒷문으로 타는 방법이 아니면 뒤쪽으로 넘어갈 수도 없다. 게다가 윈도 틴팅을 짙게 하는 건 비 오는 날 밤에는 안전 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으니 내 상식으로는 용납이 안 된다. 더 싫은 건 눈치 챈 놈들이 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거다. 훠이 훠이 쫓아내는 거건, 싸움이 붙는 거건, 어른의‘ 섹스’ 는 그런 반갑지 않은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콘돔을 사용하는 것도 그래서잖아?). 아무튼 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페팅 정도라면 차 안에서도 기쁘게 받아들이겠지만, 그대로 달아올라서‘ 카섹스’ 로 발전하는 건 절대로 싫다. 적어도 그건‘ 어른’ 의 섹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신세계가 있었으니 물론 어른스러운 카섹스도 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여봐란듯이 자수성가한,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대선배 한 분이 검은색 쉐보레 서버밴을 샀다. 미합중국 대통령 경호원들이 타는 그 거대한 차는 형식상으로는 7인승 SUV지만 거의 미니 버스에 가까운 크기다. 높고 넓은 데다 색상까지 검은색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위압감을 내뿜고 내부가 절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틴팅까지 되어 있었으며, 대체 어느 외장관리 업체에서 광을 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번쩍였다. 이미 여러 대의 차가 있는데 정식 수입되지도 않는, 너무 커서 몰고 어디 가기도 어려운 차를 구입한 연유를 물었더니, 젊은 여자 친구 때문에 이 차를 샀다는 거다. 이십 대 초반의 그녀는 자기 또래 남자아이들과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기 때문에‘ 나이 많은 남자’ 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꿈도 이뤘고, 갖고 싶었던 것도 모두 가졌지만 이제‘ 남자’ 로서 유효기간이 끝나감을 느끼고 있었을 그 선배에게 그녀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가파른 절벽 위에 핀 꽃이라도 따다 줄 용의가 있었을 테니,‘ 풋내기들이 절대 흉내 내지 못하는 색다른 섹스’ 쯤이야 식은 죽 먹기와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자동차 전문가로서 자동차에 이 정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카섹스’ 를 위한 게 아니라, 자동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한 훌륭한 시도로 여겨야 한다고 본다. 점심식사를 마친 명동 회사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주차된 차의 거울처럼 빛나는 유리창에 이를 비추며 혹시나 끼었을지 모를 고춧가루를 찾을 때, 그 6mm 두께 유리창 반대편에는 스물두 살 그녀가 얼굴을 부비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혹시 보이지는 않을까요?” 하고 걱정할 때마다 형님은 대답 대신 속도를 높였다. 그 형님과 함께 목욕탕에 가본 사람들에 따르면 자동차에만 튜닝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사실 여자는 자동차나 형님의 튜닝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을 위해 뭔가 시간과 공을 들여 연구(?) 하는 자세에 만족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형님은 말했다. 언젠가 그녀와 함께 수족관에 갔을 때, 태평양관 대형 수조 안에서 떼 지어 노니는 전갱이떼를 보고는“ 은갈치 양복 입은 사람들 몰려다니는 명동 같아요” 라는 말을 듣고는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싶었다고. 아마 그녀는 명동에서도, 수족관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아니 양복 입은 평범한 남자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디에서라도 평생 그 형님을 떠올릴 것이다. 아마도 자동차 안에서의 섹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각인. 별로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무튼 뭔가 대단한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을 대단하게 여긴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듯이, 해병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해병대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듯이, 나는 여전히 카섹스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내가 나중에 검은 대형 SUV를 사서 시커먼 틴팅을 하더라도 애먼 상상은 하지 말길 바란다. image DREAMSTIME
“ 밖에서 보이지는 않을까요?” 그는 이 거대한 SUV의 내부를 상상하는 모든 행위가 가능하도록 완벽하게 개조했다. 서스펜션은 내부에서 격하게 움직여도 흔들리지 않도록 튜닝했다. 승차감은 어차피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보통 아이들이 음식물을 흘릴까봐 직물 시트 대신 가죽 시트를 선택하곤 하는데, 그가 가죽 시트를 선택한 이유도 비슷했다. 뒷좌석은 완전히 평평하게 젖혀지고, 트렁크 공간까지 더해져 킹사이즈 침대 뺨치는 공간이 확보됐다. 거울처럼 반사 처리된 유리창은 바깥에서는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당연히 바깥이 훤하게 보였다. 그는 그 차를 사람 많은 시간의 명동 한복판으로 끌고 가서 세워 두고는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눴다.
쉐보레 서버밴의 늠름한 자태. 난 차가 아무리 커도 카섹스는 별로. 섹스는 침대에서.
March 2017 maxim 1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