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MMA 선수가 정치적인 발언을 해?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한 한국인 기자가“ 굉장히 정치적인 발언을 하셨는데” 라고 운을 뗀 후 어떤 의미였는지 정찬성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작년에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대한민국 사람은 없잖아요, 좀 건방진, 제가 할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그냥, 촛불을 든다는 생각으로 했습니다.” 정찬성의 대답이다. 두 번의 발언 모두, 자신의 말이 적절한지 스스로 의문을 표하면서 정찬성은 예의를 갖추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속마음일 텐데, 어느 종편 방송사 기자님이 들으시기엔 큰일이지 싶었나 보다. 채널A는 경기 끝난 지 약 53시간 후,“ 격투기 스타 정찬성‘ 강한 지도자 필요’ 논란” 이라는 제목으로 뉴스를 내보냈다. 뉴스라이터의 고뇌가 비루한 논거를 통해 전해지는 애처로운 영상이었다. 논란이 있으려면 한 사건에 대해 적어도 2개의 상충하는 견해나 관점이나 거시기가 필요하다.‘ 몰라 시발 마음에 안 들어서 문제 있다!’ 라고 하면 병신이기 때문에, 정찬성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주장의 뒤를 봐주는 적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했던 거다. 그런데 그런 걸 찾을 길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수학시험 객관식은 3번으로 밀고 주관식은 0, 1,-1을 랜덤으로 기입하는 수포자 고교생처럼 과감하고 용맹하게, 해당 뉴스 제작진은 그나마 찾아낸 IOC 헌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장이나 올림픽 행사를 위한 장소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50조 2항 말씀을 자막으로 내보냈다. 앵커 멘트는“ 국제 스포츠계는 경기장에서 정치적 활동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라고 나갔다.
니가 말한 국제 스포츠계가 뭐임? 개인적으로는 정찬성의 발언을 정치행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 국민의 80 % 가량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정치적 교섭이나 해결, 봉합 같은 게 통하지 않는‘ 민심’ 으로 보는 게 맞기 때문이다. 나는 정찬성이 민심을 대변했지 어떤 뚜렷한 의도를 가진 정치적 발언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불편하신 분들이 있으니, 통 크게 백번 양보했다. 따져보기로. 일단 뉴스를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 국제 스포츠계’ 란 건 도대체 뭘까. 뉴스 자막엔 IOC 헌장이 나오는데,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그것은 올림픽을 위해 제정된 규칙이다. 일단 정찬성이 정치적 발언을 하긴 했어도 그건 올림픽과 관계없는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IOC 헌장에 위배되는 행위가 아니다. 국제 스포츠계. 개념 정의가 어렵고 범주를 정하기 힘들지만 털털하게 백한 번 양보해서, 그런 게 있다 치자. 그런데 만약 그‘ 국제 스포츠계’ 라는 무리에서 열외되는 인기종목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UFC( MMA; 종합격투기) 다. MMA는 역사가 가장 짧은 젊은 종목이며, 그냥 보면 굉장히 폭력적인 쌈박질 같긴 하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역사나 전통 같은 거 과하게 따지는 일부 삼식이들과, 슬쩍 본 것만 가지고 찬양-천대의 선을 긋는 소수 얼치기들이 UFC를 막싸움으로 인식한다. UFC의 태동과 발전을 보며‘ 아이고 세상말세다’ 를 외치며 이단으로 배척하는 풍조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가장 잘 알고 오래 체감해온 단체가 누구겠나? UFC다. 그러니 UFC는 고상한 국제 스포츠계인지 뭔지에 딱히 별 관심이 없을 거다. 보통 전통 있는 인기 스포츠라는 거시기들은 책임자를 선거로 결정하는‘ 협회’ 나‘ 연맹’ 조직이 있다. 예를 들어, 축구에는 피파가 있고 그 아래 각 대륙 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 각국 협회가 있고, 그 아래 행정구역별 조직이 있다. 각 층위의 협회들은 맡은 영역에서 축구라는 스포츠를 건전하게 운영하고 발전시키고 인기도 올려놓고, 또 가끔 룸싸롱도 한 번씩 가... 가 아니라 친목을 다지기 위해 존재한다. 선거를 통해 회장을 선출한다는 건 이 조직의 공공성을 위해서일 것이다. UFC는 전적으로 개인 취향에 따라 운영된다. 각 대륙의 오피스에는 오너가 파견한 직원들이 일한다. UFC의 운영이 건전하지 않고 발전하는 대신 퇴보를 선택한다 해도, 불법이 아닌 이상 누가 뭐라 할 수가 없다. 그 외에 다른 MMA
아마추어리그도 산재한다. 통일된 조직이 없기 때문에 이게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려면 장담하는데 반만년은 족히 걸릴 거다. UFC에는 그래서 그만의 규정집이 있다. UFC Fighter Conduct Policy라는 거다.“ UFC 파이터들이 어기면 좆되는 것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범죄 저지르지 말고, 불법 약물 빨지 말고, 불법 연장 소지하지 말고, 타인의 삶에 태클 걸지 말고,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이고 불쾌감 유발하는 행동 하지 말고, 온라인에서 찌질거리지 말고, 회사 위험하게 하는 행동 하지 말고... 뭐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주목할 한 가지 조항. 타인의 인종이나 국적, 나이, 종교, 성별, 성적 취향에 관해 모욕적인 언사뿐 아니라 기호나 상징 등을 동원하는 것을 포함, 어떤 식으로도 괴롭히지 말라는 거. 한마디로 옥타곤에서 극성 박사모나 일베 같은 짓 하지 말라는 거다. 국제 스포츠계는 어떨지 몰라도 UFC 는 파이터들이 본인의 의사를 정당하게 개진하는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즉, IOC 헌장은 UFC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당 종편의 뉴스는, IOC 헌장을 액면에 깔고 국제 스포츠계라는, 뚜렷하게 존재하지도 않는 거시기로 덮어, 마치 일리 있는 소리를 하는 것처럼 주뎅이로 방귀를 뀌는 바보 같은 짓이라 하겠다.
스포츠 영웅의 메시지 이렇게 대충만 봐도 정찬성 발언에 대한 채널A의 보도는 좀 문제가 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나? 왜 스포츠 선수의 정치적 언행에 세상이 예민할까? 스포츠에서 정치적 행위가 금기시 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의 메시지가 갖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국가간 선의의 경쟁을 표방하는 올림픽의 경우 메달리스트들이 자국에서 영웅대접을 받게 되므로 그들이 혹여 정치적인 입장을 선포하고 나서면( 누군가는) 겁내 피곤해질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이 국가간의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면 올림픽이라는 이벤트의 기본 이념이 흔들려버리니 곤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종편 뉴스가 첫 예로 든 바와 같이, 올림픽 한 · 일전에서 독도 세리머니를 한 박종우 선수는 빼박 IOC 헌장 위반이다. 올림픽이라는 무대, 타국과의 마찰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것도 그렇다. 자국 영토를 수호하려는 국민의 바람, 불끈했을 젊은 박 선수의 마음, 그 당시 상황을 백번 이해한다. 다만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마음만 가지고 벌일 만큼 그것이 단순한 일이 아니었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올림픽에서 정치적인 시위를 하고서 영웅이 되는 경우도 있다. 1968 년 미국 육상팀의 200m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을 목에 건 존 카를로스는 시상대에 신발을 벗고 검은 양말만 신고 올라가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올림픽사에‘ 블랙파워의 경례’ 라는 장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그해 4월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끌던 온건파 리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3년 전 암살된 과격파 혁명분자 말컴 X에 이어 피살당했다. 두 메달리스트는 미국 흑인들이 처한 빈곤과 차별을 검은 양말로, 저항의 의지를 검은 장갑과 주먹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후 두 선수는 살해협박까지 받을 정도로 심각한 비난에 시달렸다. 그리고 두 선수의 저항에 지지를 보낸 은메달리스트 피터 노먼은 백인이었지만 백호주의 치하의 고국 호주에서 고초를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행동은 칭송의 대상이 되었고 자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단지 스포츠라 안 된다? 말이 아니라 방구 정찬성의 행동은 2012년 독도 세리머니보다는 1968 년에 두 흑형이 했던 것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UFC는 올림픽이 아니다. UFC가‘ 국제 스포츠계’ 라는 경계도 불명확한 범주에 드는지, IOC 헌장에 영향을 받는다든지 하는 뚜렷한 근거는 찾을 수가 없다. MMA는 국가대표나 상무팀은 언감생심, 그 어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해도 병역면제 혜택이 주어지지 않다. 종합격투기는 나라에서 그다지 챙겨주지 않는 풀뿌리 스포츠다. 국가대표와 올림픽을 목표로 어릴
March 2017 maxim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