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느라 혼났다. 몇몇 장면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이따금씩 생각이 났다. 가령, 전뇌를 해킹당한 청소부가 그 충격적인 사진( 무슨 사진인지 궁금하면 원작을 보라) 을 보여주는 장면 같은 거 말이다.
어린 시절에 < 공각기동대 > 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이전까지 SF물이라면 로봇이 나와서 치고 부수거나 < 스타워즈 > 같은 < 반지의 제왕 > 미래 버전 같은 작품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공각기동대 > 는 전혀 달랐다. SF임에도 세계관이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또 인간적인 작품이었다. 만화지만 영화보다 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맞닿아 있는 주제 의식. < 공각기동대 > 속‘ 인공지능’ 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인간이 그리워지면 < 공각기동대 > 를 다시 보곤 했다.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처음으로 인간,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됐다.( 아, 한 가지 작품이 더 있다. 영화 < 블레이드 러너 >. 그런데 이 작품도 속편이 나온다고 한다. 젠장!)
극 중 주인공 모토코의 몇몇 대사는 인간 사회를 꿰뚫고 있어서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치게 한다. 가령, 전신 의체 집단인 공안 9과에서 거의 생몸, 그러니까 의체를 별로 장착하지 않은 남자‘ 도구사’ 가 모토코 소령에게“ 왜 나 같은 남자를 뽑았냐?” 고 묻는다. 그러자 모토코는“ 전투 단위로서 우수해도 같은 규격품으로 된 시스템은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돼. 조직도 사람도 특수화의 끝에 있는 건 느슨한 죽음...” 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는 실제로 다가오고 있는 규격화된 미래 사회를 정확히 꼬집고 있었다. 나는 이 대사를 외우다시피 하며 가끔씩 술자리에서 써먹곤 했다.
< 공각기동대 > 가 세상에 나온 지도 이제 사반세기가 흘렀다. 2017년 지금이 어쩌면 < 공각기동대 > 에서 말하는“ 기업의 네트가 별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우주를 흘러 다니지만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정도로 정보화되어 있지는 않은 가까운 미래” 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처럼 고스트( 영혼) 를 지닌 사이보그가 인간과 공존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것이 전과 바뀌었다. 컴퓨터가 인간을 바둑으로 이겼고, 우리는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증강 현실 속 가상의 포켓몬을 잡으며 수렵 사회를 간접 경험한다. < 공각기동대 > 가 세상에 나온 1990 년대에는
그림으로 상상만 하던 일들이 실제로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몇몇 장면이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것이 가상공간‘ 네트’ 에서 활동하는 < 공각기동대 > 등장인물과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 공각기동대 > 에는 네트라는 사이버 공간이 존재한다. 극 중 주인공들은 현실과 가상공간인 네트를 오가며 사유하고, 또 범죄와 싸운다. 이 네트의 개념은 각종 SNS를 돌아다니며 콘텐츠를 접하고 댓글을 다는 우리네 일상과 닮아 있다. 어쩌면 페이스북이 네트와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 공각기동대 > 속 주인공들이 광활한 네트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페이스북을 하며 서로의 삶을 구경하기도 하고, 또 현실과는 다른 인격을 내비치기도 한다.
얼마 전,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을 들었다. 그때도 얼핏 < 공각기동대 > 를 떠올렸다. 소니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가 제작한 소프트웨어‘ 플로우머신( Flow Machines)’ 은‘ Daddy’ s Car’ 와‘ Mr Shadow’ 두 곡을 만들었다. 이 두 음악은 실제로 꽤 잘 만들어졌으며, 어떤 면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 공각기동대 > 의 사이보그들처럼 말이다. 특히 한 곡은‘ 비틀스’ 스럽다고 느껴졌는데, 실제로 비틀즈의 스타일을 분석해 만든 곡이란다. 컴퓨터는 감정이 없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작곡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인간적인 기계들과 공존해야 한다. 어찌됐든 미래 세계에서 살게 된 것이다.
실사 vs. 애니 몸매 비교, 승자는?
March 2017 maxim 1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