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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멜로 영화 # 1 남자사용설명서

우리는 천년 묵은 도깨비도, 동화 속 왕자님도 아니다. 지글지글한 수컷의 로맨스를 가감 없이 담아낸 현실 남자의 멜로 영화 < 남자사용설명서 >, 당신께 권한다.
by 이석우
그 새끼랑 잤지! 자찌! 잤네잤어!
IMAGE < 남자사용설명서 > 스틸 컷
남자들의 세계 < 남자사용설명서 > 는 2013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포스터가 망친 영화를 언급할 때 반드시 꼽히는 작품이다. 정말 이 영화는 홍보가 망쳤다. 등장 인물 소개 문구부터 엉터리다. 주인공은 만년 CF 조감독 최보나( 이시영). 영화 소개에 따르면 그녀는“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다” 고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녀는 하인 근성에 찌들지 않았고, 반대로 매우 성실하고 능력 있는 여자다. 다만 그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가 없을 뿐이다. 외모 때문이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푸석푸석한 얼굴과 떡진 머리를 하고 있는 최보나. 몇 년 째 입봉하지 못하고 촬영장 변두리만 맴돌고 있다. 촬영 중에 정확한 피드백을 주려 해도“ 너는 꼴이 그게 뭐냐, 광고주 눈치 보이게. 들어가 있어” 라고 감독에게 타박당한다. 만약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푸석푸석한 얼굴과 떡진 머리를 한 성실한 남자라면 좋은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녀의 평가는‘ 꾸밀 줄 모르는 촌스러운 애’ 일 뿐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남자들의 룰로 정당히 경쟁하려 하는 최보나, 그들의 룰로 성공할 수 있는 건 남자 뿐이란 걸 점차 깨닫는다. 여자가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벽이다. 그러던 어느 날, 최보나는 야외 촬영을 마치고 우연히‘ 남자사용설명서’ 를 손에 쥐게 된다. 반신반의하며 남자사용설명서 테이프 속 Dr. 스왈스키의 지시를 따라 하는 최보나. 거짓말처럼 지나가는 남자들의 시선은 물론 한류 톱스타 이승재( 오정세) 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게 된다.
이후 전개는 최보나에게 빠져드는 이승재의 신체적, 감정적 변화를 그리는데, 그 흐름이 마냥 판타지스럽지는 않다. 남성 심리를 다룬 실제 이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보나는 이승재와 한 번 잔다. 목적을 달성한 이승재는 금세 냉랭해진다. 이미 잤기 때문에 언제든지 스킨쉽이 가능하리라 믿는 승재. 하지만 그에게 날아오는 보나의 한 마디.
“ 우리가 무슨 사인데요? 아... 한번 잔 사이? 근데 기대보다 별로였어요.”
그때부터 한류 연예인은 한 마리 수컷으로 격하된다. 암컷에게 별로라는 평가를 들었으니 자존심 회복을 위해 최보나에게 맹목적으로 돌진한다. 여기서 남자 관객은 몰입에 머뭇거리게 된다. 여자가 남자를 마치 물건처럼 조종하는 사실이 불쾌하니까. 하지만 여자 관객도 불쾌하긴 매한가지다. 남자를 사용한 성공만이‘ 여자의 룰’ 이라고 제시하는 것 같아 언짢고,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남자들의 세계라는 점도 싫다.
찌질한 수컷과 여자 남자들의 세계는 모든 여자에게 가혹하지만, 약한 수컷에게도 가혹하다. 이승재는 약한 수컷이다. 연기 실력도 없고, 키도 작다. 하지만 굽신대고 버텨서 한류 스타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강자의 자리에서도 약한 내면은 여전하다. 계단 같은 깔창을 깔고, 조금이라도 연기를 지적하면 갖은 성질을 부린다. 경쟁하는 남배우에게 과도하게 시비를 건다. 약한 수컷의 생존법은 찌질함이다. 생존 방식은 다르지만, 힘겹게 살아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깊게 교감한다. 남자사용설명서의 팁을 활용하면서 최보나는 자신의 실력을 펼칠 기회를 차례로 얻게 된다. 그러나 성공 가도를 걸을수록 그녀는 고독하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가 성공하려면 사랑과 절연하고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이용당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 세상에 환멸을 느끼는 최보나에게, 이승재는 외려 남자를 이용한다고 비난한다.
“ 남자가 나같이 성공했으면 대단하다고 칭찬할 거잖아!‘ 잘했다’ 그 한 마디가 그렇게 힘들어?”“... 그러니까 그 새끼랑 잤냐고 안 잤냐고.”
최보나가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토해낼 때, 오정세는 어떤 수컷과 잤는지의 여부만 궁금해한다. 마냥 이승재에게 혀를 찰 일은 아니다. 발정난 수컷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발상일 뿐이고,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게 한 건 최보나다.
수컷에서 남자로 남자사용설명서는‘ 남자의 성욕’ 사용설명서다. 여자의 의도대로 남자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성욕까지다. 그 이후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답게 성공한다. 여러 갈등 끝에 이승재는 최보나의 삶을 반추하고, 그녀가 보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버림받아온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를 연민하게 되고, 그녀를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이승재의 대사는 담백하다.“ 미안해. 그냥 내가 다 미안해.” 나약한 수컷이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에게 건네는 사과다. 한 여자에게 성욕으로 얽이고, 시스템에 갇힌 여자의 고독을 이해하고, 마침내 그녀를 진심으로 위하게 된다. 이 단계부터 이승재는 전혀 찌질하지 않은, 수컷에서 남자로 거듭난다. 물론 이 세 단계 모두 사랑이다. 다만 첫 번째 단계에서만 머물러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몸이 달아 원하고, 몸이 식어 떠나가는 수컷의 사랑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기. 그것만으로 약한 수컷은 벗어날 수 있다.
그 새끼랑 잤지! 자찌! 잤네잤어!
March 2017 maxim 1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