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
피임예찬
잘 하는 남자?‘ 이걸’ 잘해야 진짜다.
by 정소담
콘돔을 처음 본 건 열 살 때였다. 엄마는“ 오늘은 너에게 조금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해” 라며 안방에서 조그마한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은빛 껍질 안에 담긴 미끄덩한 고무, 콘돔이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바나나도 가져왔다. 남자라는 존재는 바나나를 몸에 하나씩 지니고 산다는 것도 잘 몰랐을 때였으니, 사실 엄마의 성교육은 좀 이른 감이 있었다. 엄마가 이른 성교육을 한 건 그녀가‘ 현장’ 에서 일한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 수간호사로 일한 Y산부인과는 당시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던 병원이었다. 여주인공이 식탁에서 헛구역질하는 바로 다음 장면에 나오는 곳이었다. 그 병원이 드라마에 단골 출연한 이유는 아마도 병원 입구의 조형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규모이던 그 산부인과의 입구에는‘ 모성’ 이라는 이름이 붙은 웅장한 조각물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그 병원에 꽤 오래 근무했는데, 조금 나이가 들고 난 이후에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얘기도 듣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 병원에서 하도 많은 중절 수술이 이루어져 원장이 중절 전담 페이 닥터를 몇 명이나 고용했다는 이야기. 낙태 수술을 하도 많이 해 손목이 다 아프다고 농담하는 의사들 이야기. 오늘은“ 낙태가 열세 번째” 라고 말하는 여자아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임신을 피하고 싶어서
첫 경험과 함께 시작된 건 임신에 대한 공포였다. 그 두 가지가 나란히 한 쌍이라는 사실은 그간 아무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다. 나는 이른 성교육을 받고도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성교육이란 게 단지 바나나에 콘돔을 씌워 보이는 것으로는 전혀 충분치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배란기만 피하면 안전한 것인지, 콘돔이라는 게 정말 찢어지기도 하는 것인지, 콘돔 없는 관계에서도 질내 사정만 피하면 임신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나는 정말이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엄마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엄마는 열 살 아이에게 성교육을 할 만큼 깨어있었지만, 이제 막 섹스를 시작한 딸의 성생활에는 마냥 쿨할 수 없는 보통 엄마였으므로,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묻지 않은 건 그녀에 대한 나의 배려였다. 콘돔 없이 관계하려는 놈들은 대략 다 쓰레기라고, 엄마한테 배우긴 했는데 그 쓰레기가 내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멈춰 서서 콘돔 껍질을 까고 싶지 않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즈음에야 알게 되었다.
1 0 2 maxim March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