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죄의 폐지가 피임만 잘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심리적 면죄부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피임은 귀찮은 일이고 그 순간의 쾌감은 거부하기 어려우리만치 강렬한 것이다. 나는 그 강렬한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그 강렬한 감정을 도무지 거부하지 못해 임신과 중절을 반복하는 이와는 어떤 언어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 강렬하고 사소한 본능을 넘어서지 못해 태아의 난도질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대체 짐승과 인간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여성 인권이든 그 어떤 이의 인권이든 그들에게‘ 인간의 권리’ 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것이냐고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다음에 찾아온 건 낙태 가능성에 대한 공포였다. 나는 그 공포가 찾아온 후부터는 관계를 하지 않았다. 임신 가능성과 피임에 관한 나의 모든 궁금증이 다 풀릴 때까지는 안 할 심산이었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낙태를 선택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나니, 나는 내가 그런 일을 단 한 번만 겪어도 일평생을 우울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곧장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섹스하기 위해’ 내가 택한 건 이중 피임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껏 피임 없이 관계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이중 피임을 했다. 임신 가능성, 더 나아가 낙태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건 귀찮은 일도,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자녀 계획을 논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나의 피임을 알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피임 사실을 굳이 상대에게 알리지 않았던 때도 있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알아서 했고, 남자의 조력이 필요할 때에는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껏 그 요청에 응하지 않는 남자는 없었고, 있었다면 그런 남자와는 관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임의 일정 부분을 내가 알아서 한 건 여성 억압의 탓도, 남녀 불평등의 탓도 아니다. 임신과 출산을 바라지 않는 입장에서 임신이라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더 불리한 쪽은 엄연히 나였기에 그저 내가 더 신경 쓰고 챙겼을 뿐이다.
낙태죄는 유죄일까
나는 낙태죄에 반대한다. 낳는 이가 가진 권리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는 그 부모가 갖는 것이 맞다. 설사 피임을 하지 않고 덜컥 임신해버린 무책임한 부모일지라도, 그들이 타인에 의해‘ 출산하지 않을 권리’ 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낙태죄의 폐지가 피임만 잘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저지른 이들에게 심리적 면죄부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낙태죄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수정란도 태아로 보아야 할 것인지, 태아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해야 할 것인지 고민할 지점이 많다. 형법과 민법이 각자 그 기준을 다르게 두고 있을 만큼 이건 단순하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수정란과 태아에 대한 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착상된 수정란은 제거되지 않았더라면 한 인간이 될 수 있던‘ 존재’ 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설령 그것을 아직 인간으로 부르기는 어려울지라도, 그것이 생명이라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성차별’ 같은 것을 식별해내는 데 필요한‘ 젠더 감수성’ 보다 훨씬 더 적은 양의 감수성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달 맥심 칼럼의 주제는‘ 썸’ 이었다. 다음 달 원고의 주제를 고민하던 내게 담당 에디터는“ 지난 호의 주제가 썸이었으니 그다음 단계에 적합한 걸 써보라” 는 제안을 던졌다. 맨 처음 떠오른 건 좀 다른 것이었는데, 아 그 전에 하나가 더 있었지 하는 마음으로 이 원고를 썼다. 썸도 타고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는 우리는 언제까지나 서로 좋은 이야기만 나누고 싶다. 불편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기를.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모두 피임 예찬론자가 되어야 한다. 섹스에 앞서 피임만 잘해도 불편한 이야기는 훨씬 덜 할 수 있기 때문에. image flickr. com( Eric Dickman)
100 % 의 피임법이라는 건 어차피 없고, 아무리 철저히 피임해도 섹스에는 언제나 임신 가능성이 뒤따른다. 그래서 피임 담론에서는 낙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나는 우선 낙태죄( 자연 분만기에 앞서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죄) 폐지에 찬성한다.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자유와 출산의 선택권 보장 측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나는 일단 이 법이 실효성 측면에서 유명무실하다고 본다. 낙태죄가 존재하던 그 긴긴 세월 동안 낙태죄는 과연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지켜냈을까. 낙태하고자 하는 누군가가‘ 낙태죄’ 때문에 낙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낙태가 위법인가 아닌가’ 와는 별개로 과연 그것이 윤리적으로도 무죄일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지난가을, 나는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낙태 경험을 밝히며 그것은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군의 여성주의자를 마주했다. 글쎄, 정확히는‘ 여성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알다시피 임신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자신의 낙태 경험을 털어놓으며‘ 실수’ 로 임신했다거나 누군가를‘ 실수’ 로 임신하게 만들었다는 말을 하는 이에게, 나는 그‘ 실수’ 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혹시‘ 질외 사정’ 같은 것을 피임법으로 택했다가 실패한 걸 두고 실수라고 표현하는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다. 인간은 원래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므로 한 번까지는 실수라고 친다 하더라도, 두 번 이상의 낙태 경험이 있는 남녀라면 그들 모두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대체 너는 왜 피임을 하지 않는 것이냐고.
낙태는 불법? 합법?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부녀가 약물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낙태한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형법 제269조제1항)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 藥種商) 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며, 이와 동시에 7년 이하의 자격정지처분을 받는다.( 형법 제270조제1항 및 제4항)
현행법은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낙태를 한 부녀는 물론 이를 진행한 타인까지 처벌받는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제14조,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제1항 및 제2항에 의해 낙태가 합법이 될 때도 있다. 부모의 유전적 질환이 태아에게 위험할 경우, 임신이 임산부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고 있을 경우,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등은 낙태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March 2017 maxim 1 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