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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 / Baseball 2017 류현진, 1997 박찬호와 평행이론? 1997 박찬호 1997년 박찬호와 2017년 류현진은 모두 다저스의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97년부터 살펴보자.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에 빠졌다. 온 국민이 실의에 잠긴 것은 당연했다. 이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져준 이가 박찬호다. 박찬호가 등판한 전 경기가 위성중계 됐는데, 그때마다 국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의 경기를 지켜봤다. 필자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야구를 좋아하는 남자 교사들이 중계방송을 틀어주기도 했다. “삼진 잡을 때 박수 안 치면 혼난다”는 으름장과 함께. 사실 정규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박찬호의 선발 진입 여부는 불투명했다. 국가 위기가 닥칠 때면 등판하는 특급 히어로들. by 스 포 츠 동 아 강 산 기 자 1996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다저스 마운드에는 쟁쟁한 선발투수 자원이 여럿 있었다. 라몬 마르티네즈와 이스마엘 발데스, 노모 히데오, 페드로 아스타시오의 1~4선발은 이미 확정된 상태였다. 박찬호는 베테랑 너클볼러 톰 캔디오티와 치열한 경쟁 끝에 5선발로 낙점받았다. 비록 올해 류현진처럼 부상에서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팀 내 입지가 불투명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박찬호는 그해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의 성적을 거두며 확실한 믿음을 줬고, 이후 다저스의 확실한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160km/h에 육박하는 강력한 류현진(LA 다저스)이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2015시즌 초반 어깨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지금 류현진의 피칭 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뒤 기약 없는 재활을 이겨냈다. 시범 경기 메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4게임에서 방어율 2.57(14이닝 4자책점)의 성적을 거두며 데이브 로버츠 감독에게서 합격점을 받았고, 당당히 선발 로테이션에 선수 생활 말년인 2012년에는 고향팀인 한화 유니폼을 입고 류현진과 한솥밥을 진입했다.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한층 더 단단해진 류현진의 먹기도 했다. 당시 박찬호의 역할은 선발진의 플러스 알파이자 젊은 선수들의 2017시즌은 마치 20년 전인 1997시즌 당시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멘토였다. 류현진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기술적·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는 연상케 한다. 전언이다. 5 8    m a x i m   May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