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암살의 클래식, 권총 저격
유독 물질 사용보다 좀 더 직접적이고 분명한 암살 방법을 찾는다면, 역시 총이다. 원거리 무기이므로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멀리서도 공격할 수 있고, 근거리에서라면 다른 도구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확실하게 암살할 수 있다. 유독 물질과 달리 취급이 간단하고, 구하기도 훨씬 쉽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두 암살 사건에 모두 총이 사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09년 10월 26일 벌어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 * 과 1979 년 10월 26일 발생한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은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을 총으로 제거한 정치적 성격의 암살이었다. 먼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살펴보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의거의 진행 자체는 20세기 초반 여러 암살 사건의 전형적인 방법과
현장검증에서 박정희 암살 당시를 재현 중인 김재규.
유사하기에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다만 안중근 의사가 저격에 사용한 벨기에제 권총‘ 브라우닝 FN M1900’ 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총은 100년 전 현대 권총의 기본 개념을 만든 혁신적인 제품으로, 총을 발사하면 총열과 권총 윗부분이 뒤로 밀려나고 다음 번 총알이 자동으로 장전되는‘ 슬라이드’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한 권총이다. 덕분에 권총의 사이즈는 줄어들고, 명중률과 위력은 더욱 높아졌다. 참고로 이 권총의 개량형인 M1910 이 5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 때 사용된 것을 생각하면 안중근 의사는 사격술뿐 아니라 총을 고르는 안목 역시 탁월했던 것 같다.
정확히 70년 후 역사적 암살에 성공한 김재규 역시 총 고르는 센스가 남달랐다. 그가 1979 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암살할 때 사용한 권총, 발터 PPK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명품 권총 중 하나다. 권총의 고질적인 문제이던 안전성, 즉 품속에 넣어놨는데 실수로 방아쇠가 작동되거나 해머가 장전되는 현상을 막는 혁신적 안전장치를 장착한 이 권총은 훌륭한 성능에 아름답고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춰 전 세계 경찰과 군인 그리고 장교들이 기꺼이 자기 돈을 들여 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발터 ppk 는 안정성과 좋은 디자인으로 고위급 장교들에게 사랑받았다.
총을 이용한 암살이 항상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1997 년 2월 15 일 발생한 이한영 암살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다. 김정남의 사촌이자 김정일의 측근인 이한영은 1982 년 한국으로 망명했는데, 사업이 실패해 경제적으로 곤궁해지자 돈을 벌기 위해 방송과 언론, 책 출판을 통해 북한 정권의 치부와 비밀을 폭로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김정일의 분노를 샀고, 결국 북한 정권은 이한영 암살을 위해 사회문화부 소속 전문 테러 요원을 1월에 남한으로 침투시켰다. 이들은 대담하게도 남한의 심부름 센터에 돈을 주고 이한영의 집을 알아낸 다음,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그의 집 앞 복도에서 이한영을 습격했다. 그런데 암살 시도를 눈치챈 이한영이 두 요원과 몸싸움을 벌이며 강하게 저항했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 북한 요원이 사용한‘ Colt Model 1908 Vest Pocket’ 권총의 위력이 약해 그 자리에서 이한영을 죽이지 못했다. 두 발의 총을 맞고도 죽지 않은 이한영은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10일 후 사망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절차상의 허술함이 드러난 이 작전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 러시아 마피아, 한국 조폭 등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던 북한 특수 요원이 생각보다 어설픈(?) 수준이라는 굴욕적 평가를 얻게 된 사건이다.
*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암살로 볼 수 없다는 학계의 의견도 존재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을 정치적 이유로 죽였으나, 거사 이후 안중근 의사가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암살의 사전적 의미를 따라‘ 이토 히로부미 암살’ 로 표기했다.
독립군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 10 · 26.
8 0 maxim April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