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THE LINES ISSUE 10 'YOU' | Page 14

너 김유경 그날 노을 은 길었어. 붉고, 또 더웠지. 붉은 하늘을 맛본다는 건 달콤한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해.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정신 없이 흘러가는 물방울 같았고 지금은 작 은 골짜기를 지나고 있었으니 바다로 흐르기 까지 한참 동안 떠내려가야 했어. 떠내려 가는 동안 길을 찾 아야 했고. 어릴 적 봤던 바비 애니매이션에서 요정들이 천천히 구름을 분홍빛으로, 보랏빛으로, 주황빛으로 물들 일 수록 더 오래 동안 태양을 잡아둘 수 있었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지만, 요정을 만나고 싶었는 지, 집에 가기 싫었던 건지 노을을 참 좋아했었어.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였고, 너와 헤어져야 했으니까. 모래를 만지작거리고, 미끄럼틀을 타고 놀던 시간들은 노을이 지면 끝이 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단 이야기는 원하지 않는 무언가와 마주쳐야 한다는 이야기였지. 요정이야기를 지금은 믿지 않지만, 오늘 믿고 싶어. 노을 속 너를 찾으러 가는 길, 노을이 끝나지 않기를, 요정들이 시간을 잡아두기를 바래. 오늘은 꼭, 너를 찾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물살에 정신 없이 밀려가다 가 멈추었지. 오늘 하루 가지 않는다고, 바다에 도착하지 못하지는 않을 거야. 아마 너를 찾으면 함께, 더 빨리 바다에 도착할지도 몰라. 학교를 마치고 학원대신 집에 갔어. 노을이 지려고 했고 나는 서둘러 교복을 갈아입었어. 식은 밥이 밥 솥 안에 그대로 남아있고, 집에는 나 혼자였어. 온 집안이 퀴퀴한 냄새를 새어내고 있었지만 나는 반 팔 티를 꺼내 입고 나를 묶어둔 휴대폰을 가방 속에 넣고는 빈 손으로 나갔어. 갈 곳은 없었지만, 있다고 느 껴진 건 아마도 너를 오늘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껴서 일거야. 학원에 가지 않은 걸 안 순간 엄마 에게는 미친 듯이 전화가 걸려올 거고, 받지 않는다 해도 너를 찾기 힘들어질 지도 몰라. 나는 교복입은 친 구들 사이로, 더 먼 어딘가로 발길을 돌렸어. 아이들이 없는 골목길으로, 그 사이로. 발걸음은 자신의 역할 을 확실히 아는 듯이 계속 움직였고, 내 생각은 그 빠르기를 따라가지 못했지. 그러나 그곳이 멀지 않다 는 확신이 일었어.. 상실이라는 건 갑자기 찾아온다고, 너는 가끔 말하고는 했지, 결국 너의 존재도 갑작스러운 상실이 었지만, 그 상실에 나는 어려워 했어. 무언가 가슴 언저리가 텅 빈 느낌, 실체 없는 허전함. 허전함 속에 남아있는 너의 향긋한 향, 그 향은 희미한 로즈마리였는데, 놀이터에서 놀고 나면 남아있는 냄새 가 바로 로즈마리였지. 내 손에는 항상 로즈마리 향이 베어있었고, 내 소꿉놀이의 주재료가 되고는 했어. 40층이 넘는 아파트 단지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자 조금 이질적인 느낌의 낡은 아파트가 늘어서 있었어. 새로 지은 지 3년 지난 아파트와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 삭막한 40층의 그늘 속에서 벗 어났더니 시원하더라. 친근한 곳이었어. 주상복합 아파트의 반짝거리는 상가 대신 자리잡은, 벽에 균 열이 생긴 것 같은 낡은 상가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어. 선생님과 아이가 같이 치는지 또박또박 누른 듯한 건반은 하나, 하나 둘, 혹은 탁탁탁, 박자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지. 매일 들었던 동요였던 것 같 은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를 않아서 콧노래로 따라 불렀어. 노을이 산허리에 얹어지고 있었어. 요정들은 시 간을 이기지 못해 더 빠르게 구름을 물들이고 있었고. 그 상실들 사이에서 발걸음이 움직이다가 도착한 곳은 놀이터였어.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놀이 터에는 그림자 조차 비치지 않았고 가방 맨 아이들은 집-아니면 학원으로 향했어. 아이들에게 노을은 이 미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 노을 지기 전, 혹은 한 밤 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이 놀 이터는 아무 의미가 아닐지도 몰라.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