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그곳을 기억하고 있었어. 내가 살던 곳은 놀이터 바로 앞 동이었고, 간간히 옆집 사는 피
아노 선생님이 피아노를 쳐주었지. 더 이상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놀이터를 천천히 거닐었어.
누군가 썰렁한 놀이터를 떠도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지만, 나는 그 흐린 기억 속 마지막 햇빛을
찾았어. 미끄럼틀 밑, 어린 아이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에 묻어놓은 어릴 적 상자는 아직도 그 자리
에 있을까.
나는 쪼그려 모래 옆에 쪼그려 앉아 팔을 뻗었어. 다행이 모래는 얼거나 질척거리지 않았고 나는
그 좁은 칸막이 옆 부분을 파고 또 팠어. 손톱 사이로 모래가 끼고 무릎은 어디선가 튀어나는 나무 껍질에
따가웠지만 개의치 않았어. 얼마나 팠을까. 자두를 담았던 투명한 상자가 튀어나오더라. 아이의 손
이었으니 깊지는 않았겠지, 나는 상자를 꺼냈고 그 위를 덮은 모래가 폭 꺼졌어.
상자 속에선 이제 형태 조차 알아볼 수 없는 로즈마리 잎들이 쏟아져 나왔지. 내가 열심히 따고,
또 미안해서 다시 쓰려고 묻어 놓았던 로즈마리 이파리들은 내가 다시 쓰지 못했어. 그리고 이름 모를 여
러 풀들. 그리고 튀어나오는 작은 오르골. 돌리자 흘러나오는 익숙한, 그 음악. 제목은 모르지만 소리가 예뻐
서 샀었던, 6살이었나, 아주 작을 때 샀던 그 오르골은 아직도 그 소리를 간직하고 있었지. 태옆을 길게
감았다가, 다 풀리면 다시 짧게 감고를 반복했어, 이제 요정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고 해는 산 끝에 간신
히 손을 내밀었다가 사르르 사라졌지, 아직 남아있는 구름의 기운은 아직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어.
로즈마리의 꽃말이 행복한 추억 이었던가, 이제는 남아있지 않은 그 향기 속의 오르골 소린 꿈과 같
았어. 내가 찾던 네가 이게 아닐까. 어릴 적 기억, 그리고, 오르골 소리에 맞추어 움직이던, 피아노 선
생님과 나의 손가락. 그러니까. 꿈. 어쩌면 몽롱하고, 흐리멍덩하지만, 그 한 줄기 불빛에 맞추어 움직
이던 생각들, 허망하지만, 현실적이었고 다시는 멈추지 않을 그런 것들.
노을이 완전히 지고 나는 너를 찾았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바람은 내 뒤를 떠밀었어. 나
는 오르골과 그 상자를 들고 가려다 다시 내려놓고 흙으로 덮었어. 너무 어렵지 않게, 살짝 보이게. 저
기 멀리서 혼자 다가오는 양갈래 머리의 여자아이가 놀이터에서 찾을 수 있게. 네가 그 아이에게도
갈 수 있게.
이젠 바다에 닿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너를 찾았으니 그것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더
빨리 흘러가고 이젠 어디로 가야 내가 원하는 바다
를 찾을 수 있을 지 알아. 노을이 졌으니, 이제
집에 돌아가야 돼. 집으로 돌아가면 너
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에 너는 이제 그렇게
말하겠지. 돌아올 필요 없다고, 나는 너에
게 있다고. 지구 반대편의 노을이 질 때, 그
러니까 이곳에서 태양이 떠오
를 때, 그렇게 매일 속삭
일거야.
Don McCullough @ Flickr via CC BY-NC 2.0 | photography
15
Antonio Stark |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