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45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이곳에 처음 도착한지 삼십 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나는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당신은 중국인입니까?” 어쩌다가 마주치게 된 미국인들이 물어오는 첫마디였다.
으로 “나 같은
피부색깔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중국 사람으로만 보이나?”하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아 “No”라는 한마디로
끊어버렸다. “그럼
일본사람입니까?”라고
물어오면
대답은
더
강한
어조로
“No”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라고 설명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 밸 이 꼴려 “No”라는 말 외에 구태여 다른 말로
설명을 하면서까지 그들을 인식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싶지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래, 두고 봐라.
한국인이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어떻게 다른가를 두고 봐라.”라는 식의 오기 때문 에서였을까.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제
“그럼 한국인입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는 생각에 그 다음의 질문을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이런 질문은 해오지도 않았다.
고작 “그럼 어디서 왔습니까?” 라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한국과 한국인. 그들의 눈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이 어떻게 비치고 있었을까. 동양에서 일등도 아니요
이등도, 삼등도 아닌 등외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우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개최와 세계경제 십 위 권
진입이라는
것처럼.
걸쭉한
얘깃거리를
내놓곤
한다. 마치
선진으로
진입을
했다는
증거물을
사실 이런 일들은 보통 일들이 아니다. 아무나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제시하기나
하는
이런 것들을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일구어 냈다. 이것만으로도 뜻이 있고 이루겠다는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앞으로도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도 한다.
고국에서 온 한 대의 냉장고를 보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한국산 자동차만을 놓고도 무언가 뻐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의 사람들 앞에 무엇이든 내 보이고 싶기도 하고.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일부러 나타내려
하지는 않더라도 요즈음의 미국사람들은 이름이나 생김새만으로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거래처
사람들 중에는 “박영보님”이라는 서두로 시작하여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을 영문으로 표기해서 이 메일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인들과 친숙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냉장고나 자동차 한 대가 한국 상품 전체에 대한 측정이나 판단을 하는 표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이들에게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의 잣대로 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니 잔뜩 긴장이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냉장고 한
대가 이곳 시장에서 명품의 대열에 올려져 있는 것을 바라다보며 뿌듯함과 책임의식 같은 것이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명품을 선호하듯 그들이 찾아주는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한 나름대로의 몸과 마음가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