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20
아보카도 나무
아보카도. 이십 년 전 이 집으로 이사를 오기로 마음을 정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노부부가 살면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엉망이었지만 손을 좀 봐가며 살면 될 것 같았다. 마당에는 수 많은 잡목들과 허리까지
오는 잡초들로 꽉 차 있었다. 한밤중 동네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어 뒷마당에 나가보면 풀숲 사이에서 두 개씩 짝
지은 파랗고 동그란 불빛들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들 고양이들을 비롯 야생동물인 오소리 과의 라쿤이나 파슴,
어떤 때는 스컹크도 오가기도 하는 그야말로 정글과 같았다. 속으로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축소판 비무장지대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도 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 얼마나 잘된 결정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집에 마음을 굳힐 때에는 적어도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계획 같은 걸 세우고 있었다. 계획이라고 해서
훗날을 계산한 투자가치로서가 아니었다. 널따란 마당을 둘러보며 이쪽에는 무슨 나무, 저쪽에는 무슨 과일, 또
이쪽은 꽃밭, 다른 쪽은 야채 밭 등등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겉보기에 우선은 깔끔하고 현대식으로
설계된 생활에 편리한 그런 집에만 집착하고 있는 아내와의 부딪힘도 있었지만 이 싸움에서만큼은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번 결정하고 나면 나중에 후회될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이제는 아내가 나의 이러한
결정에 대한 뒷소리를 하지 않는 걸 보면 만족해하지는 않을지언정 큰 불만은 없는 가보다.
오크를 비롯한 이름도 모를 나무들 하며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와 장미처럼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유독 관심이 가는 것은 이 아보카도 나무였다. 그 우람한 자태며 무성한 가지와 진초록의 이파리에
어른의 주먹덩이처럼 큼직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마켓 같은 데서 열매를
본 일이 있고 식당 같은 데서는 먹어보기도 했지만 실제로 나무에 매달려있는 아보카도 열매를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이 집에 이렇게 큰 아보카도 나무가 세 그루나 있었다. 그러니까 뒷마당의
대부분의 공간은 이 세 그루의 아보카도 그늘에 가려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나무를 좋아하지만 이 세
나무 모두를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그 관리를 위한 별도의 계획이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다. 우선 그 낙엽을
처치하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아보카도가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일반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3 월초 꽃이 필
무렵에 시작된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낙엽이 온 마당을 뒤덮는다. 시에서 수거해가는 대형 쓰레기통이 두세
개라도 모자란다. 열매는 또 어떠한가. 평소에도 그렇지만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산타아나 바람이 있을 때는
마당에는 떨어져있는 아보카도 열매로 가득해진다. 마켓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몇 보따리씩 담아 선심을 쓰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보카도의 값은 그렇게 싸지도 않았으니 그분들에게는 작으나마 매상과 얼마의
이익을 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게다.
지은 지 육십 년이 넘은 이 집의 정원관리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너무 복잡하고 지저분하여 이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 년여의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하루라도 손에 흙을 묻히지 않으면 무언가 꼭
해야 할 일을 빠트린 것 같은 나에게는 생활의 수단으로 해야만 할 일 외에도 또 다른 일거리가 생기게 된
셈이었다. 우선
이사를
오자마자
세
나무
중
두
그루를
잘라내기로
했다. 다른
여러
가지
잡목들도
잘라냈다. 아깝기도 하고 이삼십 년 이상의 수령을 가지고 있는 아보카도나무를 잘라버린다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나무가 서있는 위치와 집 전체의 조형 또는 공간의 이용도 등을 감안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버티고 서있는 한 그루만으로도 일 년 내내 열매를 공급해주는 것은 물론 생활에 편리하고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아보카도는 1948 년 캘리포니아에 처음 이식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900 년경부터 아즈텍,
잉카, 마야인들에 의해 건강식과 미용재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맛도 담백하면서도 고소하지만 콜레스테롤도 없고
나트륨도 없어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등의 순환기 질환 발생 율을 낮추어 준다고도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저 포화 지방식이고 비타민과 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 몸에 좋은 지방(good-for-you fats)으로 꽉 차있고 영양소
흡수 촉진제로서의 역할도 한다니 단순한 눈요기거리로서 만의 아보카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