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2
닭살 돋는 아빠의 육아일기
어쩌다가 집안 정리를 하다가 책장의 구석진 자리에 꽂혀있는 두툼한 바인더가 눈에 뜨였다. 언뜻 보기에는
앨범 같기도 했다. 겉에는「육아일기」라고 써 있었다. 1974 년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가 틈틈이 써놨던
것이다. 삼 십여 년 전의 일기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써왔던 것이다. 아내는 이 아이가 출생하기 전부터
육아에 관련된 갖가지 책도 읽어가며 육아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해 오던 중 구입해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개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 하나하나를 기록해 둔 것이다. 아내는 여기에 아이의
몸무게, 신장 또는 예방접종 기록이나 건강상태 또는 이유식에 관한 내용들을 적어두었다. 성장해 가면서 변해
가는 모습과 그때그때 생기는 일들이나 기억이 될 만한 이야기들도 빼놓지 않았다.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투의
다소곳한 속삭임 같은 글도 있었고 가끔은 유명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구절도 있었다.
나도 내 나이 서른두 살에 본 첫 아이를 바라 볼 때마다 신기하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의 길고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기도 했었다. 집에 있는 동안은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다보며 속으로 기뻐하는 것이 나의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에 대한 아내의 집착의 도는 한참을 넘는 것 같았다. 나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아내에게는「내가 전부」였을 것이라고만 여겨오고 있었다.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싫던 좋던 아내는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기다리며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오던 터였다. 그러던 아내는 이제 나 같은 건
뒷전에 밀어붙인 것 같은 생각이 들만큼 아이에게만 마음을 쏟고 있는 것 같았다. 신혼 초부터도 나는 아내를
돕는답시고 크건 작던 집안일을 분담해 왔었다. 한국의 여자들 즉 아내들이 집안에서 해오고 있는 일들이었지만
이제는 분담이 아니라 전담에 가까울 정도로 나의 몫을 넓혀갔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부엌에 서성거리거나
손에 물을 묻히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아내가 쓴 이 육아 일기를 읽어가다 보니 중간 중간에 새치기를 하듯 끼어 든 나의 글도 눈에 뜨인다. 거의
삼십 년 전의 이야기가 되겠다. 내 눈이 멈추어진 곳에는 ‘모년 모월 모일’이라는 날짜에 ‘맑음’이라는 날씨까지도
적혀있었다. 마치 초등학교 때 싫든 좋든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억지로 써야 했던 일기장의 첫 줄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글을 쓴 장본인인 내가 보아도 내용이 느끼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때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 어떻게
여겨질까. 속으로 웃고 귓속말로 수군댈 게 뻔 할 것 같았다. 요샛말로 ‘닭살’이 돋을 것 만 같은 내용들이다. 그
페이지를 뜯어 없애 버릴 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무슨 미련이나 아쉬움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남들의 눈에 뜨이기 전에 창피를 무릅쓰고 공개를 해버리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아내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끄러울 게 없고 나의 애들 같은 심통도 아내 사랑에 의한 것이었다면 구태여
감출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 페이지를 뜯어내어 없애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닭살 돋고 느끼하며 유치한 몇
마디 속엔 가식이 없는 사랑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유치하고 느끼하며 닭살 돋는 내용이라는 것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대략 이렇다.
<전략>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엄마는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기다리고, 나만을 사랑했었다.
그런데 네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남의 마누라를 빼앗아 간단 말이냐.
네가 울면 네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나
싶어 달려가고, 네가 웃으면 예쁜 모습 바라보느라 떠나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을 때는 평화롭게 쌔근거리며 자고
있는 네 모습을 내려다보며 일어 설 줄을 모르고 있으니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그렇지만 말이다.
그러고 있는
네 엄마에게 화가 나지도 않고 너에게 질투심 같은 것도 생기지 않으니 모를 일이구나. 네 엄마가 너에게 쏟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