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 MAXIM_2018_07_new | Page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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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래기는 커녕“ 더 세게!” 라고 옹알이더라. 고추가 1mm씩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박으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흐름을 내 쪽으로 돌려야 했다. 냉큼 누나를 집어 끌어 모텔 방 벽에 등을 밀치고 다리를 벌리고 쪼그려 앉게 했다. 그다음 손을 위로 들어 단단히 잡고 자지를 입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저항해도 아랑곳 않고 실컷 박다 빼면 진한 침이 만들어져서 고추에 주욱 맺혀 떨어진다. 눈에 눈물이 맺힌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게 일종의 내 비기라면 비기인데, 문제는 그녀 얼굴은 전혀 당혹감이나 두려움 없는“ 그래! 이 맛이지!” 의 표정이었다는 거다. 약간 섹스 공황 장애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가끔 만나서 섹스와 대화를 나눴다. 누나의 태도에는 일관성이 있었는데,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건 모두 하게 해 줬다. 하지만 내 반응에는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고양이 같았다. 자기를 만지게 두고, 됐다 싶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지는 고양이 특유의 쌩. 이러면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한다. 내 좆대로 섹스하는데 왜 계속 아쉽지? 약이 오른 나는 관계 전복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궁리했다. 일단 우리 사이에 연애 감정이 들게 해보려 했다. 그러려면 돈 쓰는 것도 중요한데,“ 넌 특별해” 라고 강조해야 한다. 가령 섹스 후 경험 많은 여자 취급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타고난 것’ 처럼 칭찬한다. 그리고 누나랑 있으면 말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빠져드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 고작 랜덤남인 내 말이 진심이 아닌 걸 알아도, 일단 달콤하면 잠자코 듣게 마련이다. 그러다 좀 더 그런 말이 듣고 싶다는 기색을 보이면 환장하는 척하며“ 보고싶어”,“ 진짜 누나 없으면 못살 거 같아” 등을 뱉는 거다. 이건 진심 없이 타이밍에만 집중할수록, 상대가 외로운 상황일수록 잘 통한다. 예쁜 여자가 아니면 더 잘 먹힌다. 예쁜 애는 외로워도 쉽게 그 상태를 개선할 수 있으니까. 당장“ 오늘 뭐해?” 한 마디 던져도 수컷들이 몰려드니까. 이 누나는 외모도 평범하니 더 효과적일 거란 계산이었다.
물론 입 잘 털면 컨트롤당하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오빠 눈빛 진짜 섹시해”,“ 내가 본 고추 중에 오빠가 최고!” 같은 거. 경험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일수록 저런 말을 쉽게 잘 해줬다. 사랑하면 잘 안 해주더라. 아마 거드름 떨며 히죽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기대하는 괜찮은 남친의 이미지가 박살 나는 게 싫어서겠지. 아무튼 사랑하지도 않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말해 주는 이유에는 남녀 간 목적의 차이가 있을 텐데, 여자는 아마 상대가 제공하는 복지를 최대치로 끌어내고 싶어서일 테고 남자는 그냥 존나 자존심이 상해서다. 섹스 후까지도 평가당하는 위치가 이어진다면 대등하게라도 맞추고 싶은 거다.
하지만 누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개소리라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내 절규와 찬미를 매번 열심히 들어주지만, 별 반응은 않고 느닷없이 자기 본론 – 섹스 얘기를 꺼냈다. 그게 일종의 포상인 것처럼. 누나의 경험, 판타지가 하나하나 나올수록 나는
호승심을 느끼면서도 기가 죽었다. 한 번은 쓰리썸 얘기가 나왔는데, 한 남자는 자지가 정말 작았고, 다른 하나는 정말 컸단다. 당연히 큰 쪽이 어느 정도였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대뜸 제 에코백에 가져온 텀블러를 꺼내며 이것보다 조금 가는 수준이었단다. 아무튼 뭐든 해봤고, 뭐든 가능한 사람이었다. 무슨 사람 죽여봤느냐고 물어보면“ 응 죽여봤어.” 할 거 같아서 못 묻겠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거 아주 걸레년이네’ 이라고 분해했지만, 또한 동시에‘ 어 잠깐? 진짜 걸레라고 욕해도 되잖아? 좋아하니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냉큼 고추가 딱딱해졌다. 다시 열심히 박으면서 걸레걸레 노래를 불렀다. 그럼 또 좋아해! 수고했대! 또 기가 죽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사실 잘 통한다기보다 그쪽이 일방적으로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 덕에 나는 내가 사실 소통 같은 건 진실로 중요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보다 연애에 있어 결정적인 건 섹스할 때 분명 내 거다 싶은데도 항시 나를 떠날 수 있다는 불안이 들게 하는 것. 그래서 더 잡아먹어 치우고 싶은 갈증, 인정욕구, 이런 것들이었다. 고작 그 부분을 자극해주니, 실제로 그 누나는 내게 전혀 관심이 없는 인간인데도 난 진실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마냥 감복하게 되는 것이었다.
누나가 내게 질릴 즈음이 됐을 때, 조급해진 내 섹스는 더 가학적으로 변했다. 그건“ 아무리 지랄해도 먹히지 않으니 더럽혀야겠다” 는 논리였다. 가령 딜도를 사 오고 내가 보는 앞에서 자위하게 시킨다던가, 나도 쓰리썸 하고 싶다고 조른다든지가 있었다. 근데 그럴수록 나는 급속하게 지쳤다. 이도 저도 아니니 그거라도 해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리할수록 심드렁해지는 그녀의 반응을 보면서‘ 그냥 처음 만났을 때 섹스하고 도망칠걸’ 이라고 무수히도 후회했다. 그래도 매번 먼저 연락하는 건 나였다. 그러다 내가 그녀 앞에서 시도 때도 이유 없이 울먹일 지경이 됐을 때, 우리의 연락은 끊겼다. 누나는“ 당분간 못 볼 거 같아 미안” 이라고 하더니 느닷없이 연락처를 바꿨다. 나도 주제 파악은 하고 있었어서 썩 붙잡지 않았다. 또 주소나, SNS도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생각나도 별 도리는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이상형이 어느 날부터 그 누나가 됐다. 그 평범한 몸매에 평범한 얼굴이!
이상형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말이야 설현이고 수지지만, 본질은‘ 내가 최대한 퍼부을 용의가 있는 외모’ 다. 그런데 용의가 없는 외모여도, 일단 그녀에게 물질이든 시간이든 정신이든 퍼붓게 되면 그 사람이 내 이상형이 돼 버린다. 부은 것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다. 대체 왜 그렇게 퍼부어버렸을까? 나는 누나가 가진 아주 작은 요소가 내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능란한 섹스, 평정심, 그런 것. 하지만 쉽게 내주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그 누나에게 목을 메게 됐다. 그때부터는 그 누나가 그걸 갖고 있고 아니고는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그녀 자체가 필요해졌다.
July 2018 maxim 1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