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DE STORY 15호_new Apr. 2015 | Page 26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내가 그의 목소리를 잊지 않은 것처럼, 그 역시 내 목소리를 잊지 않았단 뜻이다. 나도 그도 아무런 말이 없다. 이 침묵이 힘겹다. “잘 지냈어요?” “응, 너는? 참, 결혼했다면서? 축하해.” 그리곤 또 다시 침묵. 아무래도 끊어야겠다. 아직 내 마음 속에 그가 살아있다는 게 두렵다. 왠지 신랑에게 죄를 짓는 거 같다. “그냥 전화했어요. 잘 지내나 싶어서……. 이만 끊을게요.” “윤서야, 우리 만날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서둘러 끊고 싶었던 건 혹시라도 내가 먼저 이 말을 할지 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근데 그가 먼저 말하고 있다. 예전엔 안 그랬다. 항상 내가 먼저 만나자고 말하고 그가 답하는 방식이었는데. 거절해야지. 내가 그의 무심 한 거절로 받은 상처가 얼마나 뼈저린 것이었는지 그에게도 알려줘야지. 그러나 난 바보다. 마음과는 달리 내 입은 전혀 다른 말을 토해놓는다. “그래요. 그럴 게요.” 바보 멍청이. 단세포 동물이라도 이러진 않겠다. 끊어진 전화기를 붙잡고 미친년마 냥 혼자서 중얼거린다. 커피는 식어가고 TV는 의미 없는 옹알이만 발하는 한적한 오 전.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매몰된 채로 굳어져간다. 변하지 않은 그를 만나다 약속 장소로 가는 차안, 핸들을 잡은 내 손에서 송골송골 땀이 배어나온다. 마치 초보운전자처럼 긴장하는 나. 여전히 갈등 중이다. 그냥 차를 돌려 집으로 가버릴 까? 아냐, 벌써 7년이야. 지금은 이래도 막상 그를 만나면 이렇진 않을 거야. 스스로 나를 위로한다. 어차피 한 번은 그를 만나야 한다. 지금 차를 돌리면 그를 만나지 않 아도 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선 계속 그를 떠올릴 것이다. 보지 못해서 더욱 애틋 한 마음이 자라날 것이다. 이건 나에게도, 그리고 나를 아껴주는 신랑에게도 할 짓 이 아니다. 7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다. 이젠 그도 예전처럼 샤프한 남자는 아닐 거 다. 아마 머리도 벗겨지고 배도 튀어나온 아저씨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면 7년만의 외출 27 022~041 누드스토리본문-15.indd 27 11. 6. 9. 오후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