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Magazine | Page 33

Happy Drunken Men

읽고 마시고 듣고 드러눕기 좋은 , 봄이 오고 있다 . by 배순탁 ( 음악평론가 , < 배철수의 음악캠프 > 작가 , 맥주 애호가 )
CD나 LP를 쭉 모으다 보면 , 어느 순간 커버만 봐도 “ 이건 음악 좋겠다 ” 싶은 앨범이 있다 . 실패할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름신 강림 대비 실패의 횟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 뭐랄까 , 앨범 컬렉션 세계에도 ‘ 촉 ’ 이라는 게 꽤나 중요하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 책도 마찬가지다 . 지르다 보면 촉이 생긴다 . 나는 문학 평론가나 도서 평론가가 아니기에 , 책을 구입할 때 삼는 원칙은 무조건 ‘ 내가 선호하느냐 ’ 다 . 물론 CD나 LP를 지르는 것과는 기준이 다르다 . CD나 LP 충동구매는 ‘ 커버 ’ 가 기준인 반면 , 책의 경우에는 ‘ 제목 ’ 이 특히 중요하다 .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이라면 ,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다 .
자고로 한국 맥주는 시원함을 강조해왔다 .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맥주의 주성분인 ‘ 맥아 ’ 의 비율이 지극히 낮다는 거다 . 반면 외국 맥주는 맥아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 . 독일의 경우에는 100퍼센트가 되어야 맥주라고 ‘ 법 ’ 으로 정해져 있을 정도다 . 맥주 강국 일본 역시 맥아 비율이 최소 66.7 % 를 넘어야 맥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 그 밑의 비율을 지닌 건 맥주가 아니라 ‘ 발포주 ’ 라고 부른다 . 한국 맥주는 이 발포주보다도 맥아 비율이 낮다 . 이런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한국 맥주를 멀리하게 되었고 , 각종 맥주를 찾아 마트의 맥주 코너를 모조리 섭렵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 단언컨대 , 나는 맥주계의 콜럼버스다 .
IMAGE DREAMSTIME
< 작가와 술 >( 두둥- ). 몇 주 전 ,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인 나 배순탁은 여느 때와 같이 신간들을 쭉 둘러보며 내 통장을 조금이라도 더 얇게 할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 어떻게 이 책이 유독 눈에 들어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 그저 책을 타고 , 타고 , 타고 넘어가다 보니까 ‘ 작가와 술 ’ 이라는 제목이 내 컴퓨터 화면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 뭐 고민할 것 있겠는가 ? 곧장 구매한 뒤에 그다음 날 책을 받아봤다 . 그리고 3일 만에 다 읽어버렸다 . 너무 재밌어서 .
기실 이 책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다음의 한 문장 때문이었다 . 글쎄 ,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
“ 스콧 피츠제럴드는 당시에 맥주는 술로 치지도 않았다 . ( 금주를 선언한 그에게 )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진을 안 마신다는 의미였을 테고 , 진을 안 마시는 대신 ( 술로 치지도 않은 ) 맥주를 20병쯤 들이켰다 .” - < 작가와 술 >, 저자 올리비아 랭 , 옮긴이 정미나 , 현암사
헐 . 대박 . 맥주는 술로 치지도 않았다고 ? ‘ 이제 어디 가서 술 좋아한다고 잘난 척하지 말자 ’ 다짐하면서도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 나는 거의 맥주 ’ 만 ’ 마시는 애주가다 . 희석식 소주는 별로 즐기지 않는데 , 이유인즉슨 , 거기에는 향과 맛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뭐 , 소주만 마시는 내 친구는 ‘ 처음처럼 ’ 만 고집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 참이슬 먹으면 빨리 취해 ” 라고 말했는데 , 그 말을 듣고는 솔직히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 어쨌든 , 희석식 소주에 비한다면 맥주의 세계는 다채로우면서도 광대하다 .
당연히 한국 맥주를 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 편의점에서도 1만 원이면 외국 맥주 긴 거 4캔을 득템할 수 있는데 한국 맥주를 선택하다니 ,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태도는 없지 않을까 . 아 , 물론 한국 맥주가 필요할 때가 있다 . 소맥 말아먹을 때만큼은 한국 맥주가 최고다 . 이유는 간단하다 . 맛과 향이 없으니까 . 혹시 맛과 향이 강한 외국 맥주에 소주 타서 마셔봤나 ? IPA * 맥주에 소주 말아봤나 ?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 비추다 . 내가 한 번 해봤다가 오바이트하는 줄 알았다 . 나 진지하다 . 좋게 말할 때 하지 마라 .
오해하지 말기를 . 나는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걸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 내가 뜻하는 맛과 향 없음은 그러니까 , ‘ 존재하지 않는다 ’ 는 의미에 가깝다 .
나에게 맥주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다 . 내가 늘 새 맥주를 찾아 마시고 아무리 배가 불러도 맥주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된 것은 , 음악이라는 뮤즈 덕분이었다 . 그중에서도 조금 더 거리를 좁혀 아예 맥주 관련 노래를 소개해볼까 한다 . 역시 이 노래가 일착으로 떠오르더라 .
미국 출신으로 그래미상까지 수상한 잭 브라운 밴드 ( Zac Brown Band ) 의 ‘ Chicken Fried ’ 다 . 이 곡은 그야말로 가사부터 맥주를 부른다 . 다음의 노랫말을 먼저 보라 .
You know I like my a chicken fried / Cold beer on a Friday night / A pair of jeans that fit just right / And the radio up . ( 프라이드치킨 쪼아 / 금요일 밤에 시원한 맥주 한잔 / 핏이 좋은 청바지를 입고 / 라디오 볼륨을 높이지 .)
어떤가 . 곧장 전화기를 들고 “ 여기 , 치킨 한 마리요 .” 뭔가 막 들뜬 목소리로 주문하고 싶지 않나 . 잭 브라운 밴드는 천조국 밴드니까 나 같으면 보스턴의 명품 라거 맥주 ‘ 사무엘 아담스 ’ 를 선택해 치킨과 함께 할 것이다 . 치킨에 사무엘 아담스라니 ,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황홀경이다 .
이런 과정이 나는 참 즐겁다 . “ 맥주가 거기서 거기지 . 그냥 마셔 ” 라고 일갈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하나둘 채워가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는 게 참 다행이다 .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맛있는 맥주를 찾아 마트와 편의점을 찾아 헤맨다 . 곧 봄이 올 것이고 , 그러면 마트와 편의점을 벗어나 야외에서 맥주 한잔 하기 참 좋은 날씨가 찾아올 것이다 .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이 마음을 대체 어찌할지 모르겠다 .
* IPA 라는 맥주가 몇 년 전부터 유행이다 . 인디언 페일 에일 ( Indian Pale Ale ) 의 준말인데 , 대영제국 시절 처음 등장한 맥주다 . 왜 인디언이냐고 ? 당시 식민지이던 인도에 사는 영국인들이 있었을 거 아닌가 ? 너무 맥주가 마시고 싶은데 영국에서 인도까지 오는 도중에 맥주가 다 맛이 가버리는 거였다 . 냉장 시설 같은 게 없는 시대였으니까 . 그래서 맥주의 원료 중 ‘ 홉 ’ 이란 걸 왕창 때려 박았더니 , 맛이 보존된다는 걸 발견했다 . 홉이 다량으로 들어갔기에 IPA 맥주는 다른 맥주들보다 훨씬 쓴 것이 특징이다 . IPA 는 이렇듯 임시방편으로 만든 맥주였지만 , 이게 도리어 개성으로 인정받아 이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IPA 맥주들이 요즘 판매되고 있으니 잡솨봐 .
March 2017 maxim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