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Drunken Men
읽고 마시고 듣고 드러눕기 좋은, 봄이 오고 있다. by 배순탁( 음악평론가, < 배철수의 음악캠프 > 작가, 맥주 애호가)
CD나 LP를 쭉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커버만 봐도“ 이건 음악 좋겠다” 싶은 앨범이 있다. 실패할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름신 강림 대비 실패의 횟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뭐랄까, 앨범 컬렉션 세계에도‘ 촉’ 이라는 게 꽤나 중요하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지르다 보면 촉이 생긴다. 나는 문학 평론가나 도서 평론가가 아니기에, 책을 구입할 때 삼는 원칙은 무조건‘ 내가 선호하느냐’ 다. 물론 CD나 LP를 지르는 것과는 기준이 다르다. CD나 LP 충동구매는‘ 커버’ 가 기준인 반면, 책의 경우에는‘ 제목’ 이 특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이라면,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자고로 한국 맥주는 시원함을 강조해왔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맥주의 주성분인‘ 맥아’ 의 비율이 지극히 낮다는 거다. 반면 외국 맥주는 맥아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 독일의 경우에는 100퍼센트가 되어야 맥주라고‘ 법’ 으로 정해져 있을 정도다. 맥주 강국 일본 역시 맥아 비율이 최소 66.7 % 를 넘어야 맥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 밑의 비율을 지닌 건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 라고 부른다. 한국 맥주는 이 발포주보다도 맥아 비율이 낮다. 이런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한국 맥주를 멀리하게 되었고, 각종 맥주를 찾아 마트의 맥주 코너를 모조리 섭렵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단언컨대, 나는 맥주계의 콜럼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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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술 >( 두둥-). 몇 주 전,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인 나 배순탁은 여느 때와 같이 신간들을 쭉 둘러보며 내 통장을 조금이라도 더 얇게 할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어떻게 이 책이 유독 눈에 들어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책을 타고, 타고, 타고 넘어가다 보니까‘ 작가와 술’ 이라는 제목이 내 컴퓨터 화면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뭐 고민할 것 있겠는가? 곧장 구매한 뒤에 그다음 날 책을 받아봤다. 그리고 3일 만에 다 읽어버렸다. 너무 재밌어서.
기실 이 책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다음의 한 문장 때문이었다. 글쎄,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스콧 피츠제럴드는 당시에 맥주는 술로 치지도 않았다.( 금주를 선언한 그에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진을 안 마신다는 의미였을 테고, 진을 안 마시는 대신( 술로 치지도 않은) 맥주를 20병쯤 들이켰다.”- < 작가와 술 >, 저자 올리비아 랭, 옮긴이 정미나, 현암사
헐. 대박. 맥주는 술로 치지도 않았다고?‘ 이제 어디 가서 술 좋아한다고 잘난 척하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거의 맥주’ 만’ 마시는 애주가다. 희석식 소주는 별로 즐기지 않는데, 이유인즉슨, 거기에는 향과 맛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소주만 마시는 내 친구는‘ 처음처럼’ 만 고집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참이슬 먹으면 빨리 취해”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솔직히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희석식 소주에 비한다면 맥주의 세계는 다채로우면서도 광대하다.
당연히 한국 맥주를 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편의점에서도 1만 원이면 외국 맥주 긴 거 4캔을 득템할 수 있는데 한국 맥주를 선택하다니,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태도는 없지 않을까. 아, 물론 한국 맥주가 필요할 때가 있다. 소맥 말아먹을 때만큼은 한국 맥주가 최고다. 이유는 간단하다. 맛과 향이 없으니까. 혹시 맛과 향이 강한 외국 맥주에 소주 타서 마셔봤나? IPA * 맥주에 소주 말아봤나?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 비추다. 내가 한 번 해봤다가 오바이트하는 줄 알았다. 나 진지하다. 좋게 말할 때 하지 마라.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걸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뜻하는 맛과 향 없음은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다’ 는 의미에 가깝다.
나에게 맥주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다. 내가 늘 새 맥주를 찾아 마시고 아무리 배가 불러도 맥주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된 것은, 음악이라는 뮤즈 덕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거리를 좁혀 아예 맥주 관련 노래를 소개해볼까 한다. 역시 이 노래가 일착으로 떠오르더라.
미국 출신으로 그래미상까지 수상한 잭 브라운 밴드( Zac Brown Band) 의‘ Chicken Fried’ 다. 이 곡은 그야말로 가사부터 맥주를 부른다. 다음의 노랫말을 먼저 보라.
You know I like my a chicken fried / Cold beer on a Friday night / A pair of jeans that fit just right / And the radio up.( 프라이드치킨 쪼아 / 금요일 밤에 시원한 맥주 한잔 / 핏이 좋은 청바지를 입고 / 라디오 볼륨을 높이지.)
어떤가. 곧장 전화기를 들고“ 여기, 치킨 한 마리요.” 뭔가 막 들뜬 목소리로 주문하고 싶지 않나. 잭 브라운 밴드는 천조국 밴드니까 나 같으면 보스턴의 명품 라거 맥주‘ 사무엘 아담스’ 를 선택해 치킨과 함께 할 것이다. 치킨에 사무엘 아담스라니,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황홀경이다.
이런 과정이 나는 참 즐겁다.“ 맥주가 거기서 거기지. 그냥 마셔” 라고 일갈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하나둘 채워가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맛있는 맥주를 찾아 마트와 편의점을 찾아 헤맨다. 곧 봄이 올 것이고, 그러면 마트와 편의점을 벗어나 야외에서 맥주 한잔 하기 참 좋은 날씨가 찾아올 것이다.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이 마음을 대체 어찌할지 모르겠다.
* IPA 라는 맥주가 몇 년 전부터 유행이다. 인디언 페일 에일( Indian Pale Ale) 의 준말인데, 대영제국 시절 처음 등장한 맥주다. 왜 인디언이냐고? 당시 식민지이던 인도에 사는 영국인들이 있었을 거 아닌가? 너무 맥주가 마시고 싶은데 영국에서 인도까지 오는 도중에 맥주가 다 맛이 가버리는 거였다. 냉장 시설 같은 게 없는 시대였으니까. 그래서 맥주의 원료 중‘ 홉’ 이란 걸 왕창 때려 박았더니, 맛이 보존된다는 걸 발견했다. 홉이 다량으로 들어갔기에 IPA 맥주는 다른 맥주들보다 훨씬 쓴 것이 특징이다. IPA 는 이렇듯 임시방편으로 만든 맥주였지만, 이게 도리어 개성으로 인정받아 이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IPA 맥주들이 요즘 판매되고 있으니 잡솨봐.
March 2017 maxim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