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
새벽, 달아오르는 시간
우연한 새벽의 일이었다. by 채희진
그녀와 가장 뜨겁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누군가는 아침을 말한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출근을, 학생이라면 등교를 하는 시간. 지난밤을 보낸 그녀와 출근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서둘러 격렬하게 끝내는 섹스야말로 가장 뜨거운 섹스라고. 오후를 찬양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라나. 4시간 대실 시간을 보낸 뒤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더 할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 대체로 한두 시간 정도는 더 준다는 게 그의 통계 지표다). 밤처럼 졸리지 않은 낮 시간엔 더 많은 것을, 더 오래 즐길 수 있어서 양적 · 질적으로 농도 짙은 섹스가 가능하단다. 망설임 없이 저녁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퇴근하고 만난 직후 허기를 달래기 전 하는 섹스. 식욕까지 성욕으로 끌어올려 침대 위는 더욱 달아오르고, 각자 하루를 보내면서 지친 서로를 거칠게 달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끝나고 술 한잔 기울여도 좋고, 조용한 골목 구석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 식욕을 채우며 또 한 번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저녁에 하는 섹스의 매력.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심야 영화를 한 편 보기에도 넉넉한 시간이다. 보통은 밤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음 날 아침까지도 함께 있는 게 당연해지는 시간. 막차를 놓칠세라 급하게 끝내고 바삐 나가는 것도 나름의 스릴이 있고, 느긋하게 수면으로 이어지는 밤 섹스야말로 최고가 아니냐고 말이다.
새벽은 어떨까. 자정이 지나고 동이 트기 직전까지의 시간. 누군가는 저녁부터 이어진 술자리에 고주망태가 되어 아무 말 대잔치를 열고, 또 다른 이는 지난밤 못다 끝낸 업무에 이끌려 침대를 벗어나 이른 출근 준비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낮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진다. 달콤한 꿈에 젖어 있거나. 악몽에서 깨기 위해 뒤척인다. 새벽은 차갑고 고요하다. 낮 동안 세로토닌을 분출하며 차분하고 이성적이기만 하던 그녀도 새벽이 되면 무방비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멜라토닌의 마법이다.
아침과 새벽은 확연히 다르다. 새벽은 해가 머리를 살짝 내보일 때까지의 시간. 아침은 해가 그 이상 드러낸 후다. 신체의 상태를 지표로 삼는다면 비몽사몽한 건 새벽, 뻑적지근한 건 아침. 정신적 피로보다 몸의 피로가 클 때에야 비로소 아침이다. 아침을 맞은 몸은 어쩐지 뻑뻑하고 건조하다. 그렇지만 아직 밤의 기운이 남아 있는 새벽의 몸은 아침의 몸보다 부드럽다. 잠이 완전히 다 깨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일까. 환각 상태에 빠진 것처럼 적당하게 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이 비단결 같다. 밤새 온몸 구석구석에서부터 방출된 페로몬 잔향은 은은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꿈이라 그런 걸지도.
1 6 6 maxim March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