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Magazine | Page 121

작가가 부정한 < 미인도 >
1991 년, 국립 현대 미술관이 10년간 창고에 보관했던 천경자 화백의 < 미인도 > 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그림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개인 소장품이었다. 그가 체포되면서 국가에 환수되어 미술관으로 넘어온 것으로 작품 출처가 분명했다. 그런데 정작 천경자 화백은 < 미인도 > 를 그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으로 작품은 있는데 작가가 없는, 희대의 미스터리 위작 시비가 시작됐다. 천 화백이 최첨단 과학 감정 같은 탄탄한 증거를 내놓은 건 아니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화가에게 작품은 분신이고 자식이다. 내 새끼 못 알아보는 부모가 어디 있나. 내가 내 그림이 아니라는데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한가?” 창작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라고 얘기하는 세상에 질린 천화백. 이후 절필을 선언한다. 26년 뒤,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 의 첨단 과학 감정 결과는 천 화백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 미인도 > 가 진품일 확률은 0.0002 % 에 불과하다고 밝힌 것.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을 수치화해 분석한 결과, < 미인도 > 의 수치만 다르게 나왔다. 그런데도 최근 법원은 < 미인도 > 를 진품이라 판결했다. 유족은 천 화백이 생전에‘ 이 그림은 위작이고 가짜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고 작성했던 자필 공증서를 공개하며 항소로 대응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녀의 위작 논란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 모나리자 > 의 비밀을 밝혀낸 프랑스 유명 감정 팀.
의문‘ 점’ 만 남은 위작
LAYOUT 전수진
한국 미술계의 거장 이우환 작가. 현존하는 국내 작가 중 가장 고가인 약 24억 원에 작품이 거래된 거장도 위작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의 작품 중 13점이나 위작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 경찰은 민간 전문가의 안목 감정과 국과수의 과학 감정 등을 통해 13작품 모두 위작으로 판결했고, 작품을 전시한 화랑운영자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정작 이우환 화백은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림을 직접 보겠다며 프랑스에서 귀국했다. 그리고 13점 모두 틀림없는 자신의 그림임을 확인했다. 이 화백의 작품은 언뜻 보면 간단하고 누구나 그릴 수 있어 보이지만 사실 점 하나 찍는데 40∼50일이 걸릴 만큼 에너지와 집중력을 요한다. 때문에 항상 자신을
가다듬으며 일정한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 작품에는 그런 이 화백 고유의 호흡과 리듬이 깃들어있어 모방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경찰 조사에도 불만을 품었다. 위작 논란이 있었던 작품 13점을 확인하고 싶다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1년이 지난 뒤에야 받아들여졌다. 감정 과정에서 제작자인 자신이 배제됐다는 사실에도 분노했다. 위작 논란이 있는 작품의 작가가 생존한다면 작가에게 가장 먼저 진위 여부를 확인해 그 의견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인데 자신은 작품을 확인해보지도 못한 채 수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경찰) 은 나를 조사한 적이 없어요. 자기네들 맘대로야!” 프랑스에서 입국하며 위작 판정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이 화백이 남긴 말이다.
March 2017 maxim 1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