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Magazine MAXIM_2017_05_new | Page 58

sex
내가 아는 가장 이기적인 사람, 가장 이상한 사람, 가장 유치한 사람,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 각각을 떠올려보니 전부 나의 전 남자 친구들이다. 못 견디게 좋아서 만나기 시작했고 우린 어쩌면 이렇게 잘 맞을까 행복했던 날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왜 가장 부정적인 것들의 대명사로 기억에 남게 되었을까.
아마도 가장 많이 싸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인이 아니면 격렬히 싸울 일도 없다. 싸우지 않으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면모를 들여다 볼 일도 잘 없다. 나이 들수록 타인과 싸울 일 같은 건 점점 사라지게 마련이다. 친구와는 싸우느니 거리를 두게 되고 지인과는 다투느니 왕래를 끊게 된다. 그러나 연인과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 그러니 나의 지난 연인들 역시 살면서 만난 가장 이기적이고 이상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나를 꼽는다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연인 사이에는 성격 궁합, 음식 궁합, 속궁합 등등 좋은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한 궁합이 잘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계의 오랜 유지를 위해서는 나쁜 순간을 맞았을 때의‘ 싸움 궁합’ 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호에서는 잘 싸우는 기술에 대해 써보려 한다.
대화의 원리
먹고 살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국어 강사 일이 적성에 꽤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단지 학창시절에 국어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시작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후에는 수많은 시간을 들여 국어 공부를 다시 해야 했다. 그렇게 이십대 중반이 되어 중 · 고등학교 국어책을 다시 펼친 후 놀랐던 순간이 몇 번 있다. 내가 갖은 노력과 경험으로 겨우 터득한 말하기, 듣기, 쓰기의 기술들이 이미 교과서에 다 실려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의 원리’ 에 관한 내용은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가장 첫 부분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화를 할 때에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말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규칙으로는 부담스럽지 않게 말하기, 내 탓으로 돌려서 말하기, 칭찬하며 말하기, 겸손하게 말하기, 동의하며 말하기가 있다.
1. 부담스럽지 않게 말하기
‘ 부담스럽지 않게 말하기’ 는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는 표현 대신 이익이 되는 표현을 하라는 규칙이다. 교과서에는 이 규칙이 적용된 대화 사례와 적용되지 않은 대화 사례도 친절히 실려 있는데, 이 내용을 연인 사이의 대화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여: 자기야, 나 좀 데리러 와.
나쁜 예 남: 왜? 여: 피곤해서 그래. 좀 데리러 와.
여: 자기야, 내가 어제 밤을 샜는데, 미안하지만 나 좀 데리러 와줄 수 있어?
좋은 예
남: 그래, 알겠어. 여: 고마워, 오늘 대실비는 내가 낼게.
상대방에게 부탁이나 요구를 할 때에는 일방적인 명령의 표현을 쓰면 안 되고, 위와 같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부담을 주어서 미안하다는 표현, 고마움의 표현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이 규칙의 내용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선조들의 말씀을 떠올리게 되는 대화의 원리다.
2. 내 탓으로 돌려서 말하기
관용의 원리라고도 불리는 이 원리는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려서 상대방이 관용을 베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남: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해?
나쁜 예 외국어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여: 오빠가 멍청해서 못 알아듣는 거겠지.
남: 오빠가 이해력이 좀 부족해서 그런데, 다시 한 번 얘기해줄 수 있니?
좋은 예
여: 아니야. 내가 설명을 잘 못 했나봐. 다시 한 번 잘 설명해볼게.
“ 연인 사이에는 좋은 순간을 함께하기 위한 합도 중요하지만, 나쁜 순간을 맞았을 때의‘ 싸움 궁합’ 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화에서 문제를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면 상대방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위의 대화에서처럼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표현을 하여 상대방이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도록 말하라는 것이 이 규칙의 내용이다. 문제가 자신에게 있을 때 그걸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도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면, 상대방은 머쓱한 기분을 느끼는 동시에 오히려 스스로 부끄러운 기분을 느끼게 될 때가 많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 이라는 역설의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5 6 maxim May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