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집에서 사는 데 반해, 신랑이 신부 또는 신부의 모계 친척 집으로 가서 사는 경우는 전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아이를 아버지 혈통으로 보는 경우가 어머니 혈통으로 보는 경우보다 다섯 배 더 많았다. 부계성을 따르는 것이 모계성을 따르는 것보다 다섯 배나 더 흔하다는 뜻이다.
다른 예를 보자. 인도 남단의 케랄라 지역은 비가 많이 오고 건기가 짧아 북부 지방과 다르게 밀을 재배하지 않고 작은 논에서 쌀을 주로 재배한다. 농사에 이용하는 동물도 보통 소가 아닌 물소이며, 쟁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진흙을 섞고 짓이기기만 하면 된다. 이런 동물을 농사에 이용하는 데는 여자나 어린아이로도 충분하다. 쌀 논농사와 남녀 지위 사이의 상관관계는 케랄라 남부 및 동부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광대하게 적용된다.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의 농업 국가는 모두 젖은 쌀 생산에 생계의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이 자유와 권력을 크게 누려왔다.
LAYOUT 임은희
게다가 모계성과 모 가장제는 엄연히 성질이 다르다. 모계성을 따르는 집단에서 여성의 지위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맞지만 경제, 사회,
종교를 전적으로 지배한 것은 남성이었고, 남성만이 한꺼번에 다수의 배우자를 거느릴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모계성을 따르는 집단에서 최고 권력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어머니의 남자 형제였다.
남자가 결혼 후 어머니와 같이 살지 않고 외삼촌, 즉 어머니의 형제 집으로 가서 사는 것을‘ 아방클로칼리티’ 라 한다. 이것은 모친의 형제가 일가 집단의 아이들을 통솔하고 재산을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 반대 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류학자들은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그 반대 유형을‘ 아미탈로칼리티’ 라고 이름 붙였다. 부계 사회에서 결혼한 남자가 아내를 따라 아내의 고모 집으로 가서 사는 것이다. 혈통은 남자 쪽을 따르지만 일가친척 집단의 아이나 재산을 다스리는 것은 아버지의 누이임을 의미한다. 아무튼 더 복잡한 이야기는 됐고, 나중에 내가 더 유명해지면 출간될 책을 사서 보도록 하자.
육식이 성 차별의 원인이다? 위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일부 여성주의자는, 어떤 사회 조직이 고기 분배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을수록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농작물 경작에 토대를 둔 경제에서는 여성이 과일이나 그 밖의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남녀의 지위를 결정하는 원인이 주된 먹거리가 고기냐, 채소냐에 달려 있을까? 서아프리카와 인도 북부 지역을 비교해보면 고기 분배가 아니라 주된 먹거리의 생산 기여도가 남녀의 지위를 결정하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주로 쓰는 농사 도구는 소가 끄는 쟁기가 아닌 손잡이가 짧은 곡괭이로, 인도 북부에서 쓰는 것과 같다. 서아프리카에서 쟁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습기가 많고 그늘진 지역에서 창궐하는 체체( tsetse) 파리 때문이었다.‘ 체체’ 는 보츠나와 원주민의 언어에서 유래한 말로, 체체파리는‘ 소를 죽이는 파리’ 라는 뜻이다. 소가 끄는 쟁기는 쓰지 못하지만 다행히 서아프리카의 흙은 인도 북부의 것처럼 딱딱하지 않아 여성이 곡괭이만 가지고도 충분히 밭을 갈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남자 없이도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들고 나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었다. 반면 인도 북부에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농사 기여도가 많이 떨어졌다. 이곳의 땅은 딱딱하게 굳어서 땅을 쟁기로 갈기 위해서는 남성의 힘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즉 남자들이 쟁기를 독점한 것은 수렵 집단에서 남자들이 사냥 도구와 전쟁 무기를 독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남자들은 여자보다 약 15 ~ 20 % 정도 더 효율적으로 농사를 수행했다. 그래서 이 두 지방에 사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결국 생계를 이어나가는 전문성에서 처음에 누가 더 뛰어나냐에 따라 그 이후의 성 역할이 고착된다. 쟁기 끄는 방법을 배운 남자들은 소에게 쟁기를 씌워 몰고 가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다. 바퀴가 발명되면서 남자들은 소의 멍에를 수레에 연결해 우마차를 움직이는 데 전문성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남자들은 곡식을 시장에 운송하는 일을 떠맡고, 몇 단계 나아가 지역 안에서 그리고 장거리로 이루어지는 교역과 상업을 지배하게 되었다. 교역과 상업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 중요해졌는데, 그 임무를 떠맡은 것 역시 교역과 상업에서 활동적인 남자들이었다. 따라서 교역 · 상업을 위한 쓰기와 산수가 발명되면서 남자들은 인류의 첫 번째 서기와 회계사로 등장했다. 여성보다 남성이 먼저 문자를 해독하고 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처음 알려진 철학자, 신학자, 수학자가 남성인 까닭도 바로 이것으로 설명된다.
육식에 남성 우위가 있다? 여성이 그동안 육식을 상대적으로 덜 섭취해온 것은 위와 같은 사냥과 전쟁을 통한 남녀의 지위 차이에 따른 결과이지 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모 가장제 같은 것은 없었다. 가부장적 질서 아래 여성이 오랫동안 핍박받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불균등한 단백질 배분 문제에서‘ 불균등’ 을 문제 삼아야지‘ 단백질 배분’ 자체를 문제 삼으면 곤란하다. 이 사람은 배가 부르고 저 사람은 배가 고프니, 둘 다 먹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아닌가? 고기는 권력을 쥔 자가 쟁취하는 일종의 전리품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남성들이 비교적 더 많이 누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앞뒤가 바뀌어 고기가 남자의 음식이며 육식이 남성다운 행동이라고 말하며 그 반대급부로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고기가 남성만을 위한 것이며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면, 남녀의 위치가 평등해야만 하는 현대사회에서 더 호혜적으로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까?
결론: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고기를 많이 먹자.
May 2017 maxim 1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