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Magazine Issue 11: If/만약 | Page 36

‘ ’ 이라는

김혜지
내가 쓰는 언어로 정의 내린 지금 이 세상은 ‘ 벽들의 자기주장 ’ 이다 . 지금 세대에 서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 중에 끝까지 갈 수 있는 일은 얼마 나 될까 .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 사람들은 보통 “ 끝까지 갈 거야 .” 라고 말만 하지 실제로 도전을 하지 않는다 . 또한 끝까지 가보 려는 사람들도 크고 단단하고 무거운 벽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 그렇다면 자신이 이 분야에 몇 십 년씩 있어서 모두 통달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이다 . 첫째로 본인의 위치에 익숙해진 것이다 . 사람들은 벽에 부딪혔을 때 그 벽이 본인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 즉 본인이 더 이상 나아가 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끝까지 걸었기 때문에 나아갈 곳이 없다고 착 각하는 것이다 . 한마디로 ‘ 통달에의 착각 ’ 이다 . 둘째로 사람들이 모두 ‘ 통달에의 착각 ’ 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한 분야를 오랫동안 집요하게 파왔다는 사람이 나 와서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모두 “ 저 사람은 정말 통달했네 .”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는 거리가 벽이기 때문에 , 또한 앞에 서 말했듯이 그 최고로 먼 거리를 그 분야에서 ‘ 끝 ’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 래서 우리들은 우리의 짧은 거리에 그 사람을 비교해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사 람은 자신보다 더 멀리 다녀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통달하였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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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 벽들의 자기주장 ’ 에 살고 있고 그 벽들은 어디든지 즐비해 있어서 살면 서 몇 번이고 부딪힌다 . 이 벽들이 우리 세상에서 서로 더 단단하다며 자기주장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아마 우리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일 것이다 . 하지만 책임을 모두 사회에 돌림으로써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에 대해 먼저 책 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내가 말하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 우리들 ’ 은 노력하는 데도 벽이 보이는 사람들이다 .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거기다 커다란 벽으로 앞길을 막아 버린다 . 그것은 지금 이 사회가 문제 이다 . 사회는 큰 벽에 , 빨리 가로막힌 사람들을 원한다 . 큰 벽에 가로막혀서 그 냥 그 자리에 익숙해하고 벽에 반대편으로 쉽게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 . 벽을 어 떻게든 넘어보려고 , 구멍이라도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다 . 세상 은 그들을 반항아로 통칭하기 때문이다 . 그저 자신들에게 ,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람이 편하기 때문에 그들만을 원한다 . 이는 모순이다 . 말로는 “ 한계가 없는 인 재를 찾습니다 .” 라고 하면서 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을 원한다 . 그래서 요즘은 ‘ 한 계가 없는 인재 ’ 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앞에 안 그래도 많은 벽을 스스로 더 많이 세운다 . 그래서 쉽게 끝까지 왔다고 느끼고 , 쉽게 ‘ 통달에의 착각 ’ 을 겪고 , 더 빨 리 ‘ 한계 없는 인재 ’ 가 되었다고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