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는
김혜지
내가 쓰는 언어로 정의 내린 지금 이 세상은‘ 벽들의 자기주장’ 이다. 지금 세대에 서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 중에 끝까지 갈 수 있는 일은 얼마 나 될까.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통“ 끝까지 갈 거야.” 라고 말만 하지 실제로 도전을 하지 않는다. 또한 끝까지 가보 려는 사람들도 크고 단단하고 무거운 벽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 분야에 몇 십 년씩 있어서 모두 통달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이다. 첫째로 본인의 위치에 익숙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벽에 부딪혔을 때 그 벽이 본인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즉 본인이 더 이상 나아가 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끝까지 걸었기 때문에 나아갈 곳이 없다고 착 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통달에의 착각’ 이다. 둘째로 사람들이 모두‘ 통달에의 착각’ 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 분야를 오랫동안 집요하게 파왔다는 사람이 나 와서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모두“ 저 사람은 정말 통달했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는 거리가 벽이기 때문에, 또한 앞에 서 말했듯이 그 최고로 먼 거리를 그 분야에서‘ 끝’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래서 우리들은 우리의 짧은 거리에 그 사람을 비교해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사 람은 자신보다 더 멀리 다녀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통달하였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할 수 있다.
33
우리는‘ 벽들의 자기주장’ 에 살고 있고 그 벽들은 어디든지 즐비해 있어서 살면 서 몇 번이고 부딪힌다. 이 벽들이 우리 세상에서 서로 더 단단하다며 자기주장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우리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모두 사회에 돌림으로써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에 대해 먼저 책 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우리들’ 은 노력하는 데도 벽이 보이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거기다 커다란 벽으로 앞길을 막아 버린다. 그것은 지금 이 사회가 문제 이다. 사회는 큰 벽에, 빨리 가로막힌 사람들을 원한다. 큰 벽에 가로막혀서 그 냥 그 자리에 익숙해하고 벽에 반대편으로 쉽게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 벽을 어 떻게든 넘어보려고, 구멍이라도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다. 세상 은 그들을 반항아로 통칭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에게,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람이 편하기 때문에 그들만을 원한다. 이는 모순이다. 말로는“ 한계가 없는 인 재를 찾습니다.” 라고 하면서 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을 원한다. 그래서 요즘은‘ 한 계가 없는 인재’ 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앞에 안 그래도 많은 벽을 스스로 더 많이 세운다. 그래서 쉽게 끝까지 왔다고 느끼고, 쉽게‘ 통달에의 착각’ 을 겪고, 더 빨 리‘ 한계 없는 인재’ 가 되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