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군주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으나, 이는 한낱 노동자였던 정욱에게는 관심사 밖이었다.“ 오빠, 자?”“ 안 자.”“ 있잖아, 오빠.” 순이가 방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곱기도 참 고왔다. 그 는 누워있는 오빠의 등을 보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 … 내가 결혼하는 거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그러니까, 오빠도 조만간 가야 될 테고, 아니, 오빠는 가는 게 아니지. 아무튼, 나, 걔, 그러니까 결혼할 사람 이, 서울 쪽에서 일하게 됐대. 그래서 나두 그리루 갈 거구.” 순이는 누워 있는 오빠의 등을 툭 건들이고는“ 자주 올게.” 라고 하고는 이불을 덮 어주고 방을 나갔다. 사실은 기뻤다. 서울에서 일하는 거면 어떻게 사는 거지? 내 동생은 잘 챙겨 줄 수 있겠지? 그렇게 그는 벌떡 일어나 모아둔 돈을 확인했다. 그 정도면 무엇이든 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혼자 뿌듯해하며 잠자리에 다시 들어가 웃으며 잠에 들었다.
일순간 공습경보가 울렸다. 거리는 전염병에 의해 죽은 시체들과 거적때기에서 나 온 진물들과 피로 물들여 있었다. 곳곳의 집에는 벌건 동그라미가 박힌 욱일기가 펄 럭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독립 운동가를 숨겨주시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 다. 어릴 적부터 여동생을 따라다니던 그 놈은 만주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었다.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던 일본군의 말을 믿고 따라간 순이는, 탄광 책임자의 말에 의 하면, 일본군들의‘ 욕구’ 를 채워줄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는 소식 밖에 듣지 못했다. 그는, 이 곳, 일본 탄광에서 일할 인부로 끌려왔다. 가까스로 탈출했다. 먼저 탈출한 동료가 있다던 히로시마로 무작정 찾아왔다. 배 를 타고 부산으로 가려 했지만, 여동생을 빼다 박은 한 조선 아이 엄마의 울음을 듣 고 자리를 양보해, 아침 내내 이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공습경보가 울 리는 것이었다. 비행기, 작은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간다. 일순간 그의 눈이 뒤집혔다.“ 황제 폐하 만세!!” 손을 높이 치켜들고 그가 외쳤다.“ 고종 황제께서 백성을 구하러 친히-“ 그 순간 한 총알이 그의 다리를 관통했다. 뒤를 돌아보니 일본 헌병 두 명이 총을 빼들고 식식대며 무어라 욕을 퍼붓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도 정신이 돌아오 질 않았는지, 다시 손을 높이 들어“ 고-, 고종 황제께서- 백성을 구하러 친히 오셨다! 대한 독립 마- 만세!” 라 외쳤다. 이에 일본 헌병이 총알을 두어 발 더 쏘았다. 그 쪽에서도 미친 놈이라 간주한 것이 다.“ 쏘- 쏘지 마, 이 씨팔 새끼들아 …! 나라 하나 망쳐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래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탄광에서 단련된 맷집이었다. 그는 옆에 있는 벽을 붙잡고 가까스로 서 있었다. 그는, 그가 흘린 피인지 시체에서 나온 피인지도 모를 피를 찰박거리며 소리쳤다. 그는 총에 맞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외쳤다.“ 어머니! 아버지! 순아!” 그 순간 총소리가 와다닥 하고 들려왔다. 소리가 남과 동시에 그는 뒤쪽으로 서서 히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공습경보가 꺼졌다. 그의 눈에는 펄럭이는 욱일기, 그리 고 단 한 대의 비행기와 단 한 발의 폭탄이 보였다.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는 조용히,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말했다.“ 내가 바란 8 월 6 일은 이게 아녔는데 …”
그리고 1945 년 8 월 15 일. 일본은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 마저 잃고 나서야 무 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천황도 인간인 것은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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