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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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수많은 날 중의 하나였다. 고종은, 재위 이후로 조선의 근대화에 힘써 어느 새 조선을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수 년 전, 안정을 찾 은 조선을 보며‘ 대한제국’ 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순종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입헌 군주제로 바꾸길 희망하여 고종과의 마찰이 종종 오갔지만 아직까진 평화로운 분 위기를 띠고 있었다. 정욱은 당시 갓 스무살이 된 장정이었다. 그에게는 여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동생이 있었고, 농사를 지으며 사는 부모님 또한 있었다. 그는 평범한, 면직 공장에 다니는 신입 근로자였을 뿐이다. 그래도 다들 그의 성실함을 좋게 봐 주었는지, 그는 공장 내에서 좋은 평판에 힘입어 눈에 띠게 성장을 거듭하곤 하였다. 그 날은 유독 더운 날이었다. 그는 공장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1945 년 8 월 6 일.‘ 아침부터 찌는 듯이 덥군 …’ 그는 땀을 닦으며 자신의 미싱기를 만지작 거렸다. 미싱기에 묻은 손때는 그의 성 실함을 증명해주는 듯, 반짝거리며 빛났다.“ 어이, 박정욱이! 자네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어!” 그는 전화를 하셨다는 말에 의자에서 뛰쳐나와 선배가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을 지주댁이라는 말과 함께 여동생 순이의 혼담이 오 갔다는 말이었다. 정욱은, 아직 열여덟 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슨 혼담이냐며, 아직 은 이르다고 어머니를 타일렀다. 이윽고, 동생이 바꿔들었는지,“ 내가 하자 그랬어, 오빠. 열여덟이 뭐가 일러 … 내 친구 중에 열다섯에도 가고 그 런 애 있어. 나 내년에 학교 졸업하니까, 일찍 말 가두는 게 낫지 싶었어. 그리고 우 리 집 형편이나 내 성격을 봐서는 대학은 무리야.” 아무리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정욱이라고 해도, 여동생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말 은 무언가 아쉬움이 들었다. 사치는 맞았다. 지주도 아닌 평범한 시골집에서 대학 은 무슨, 싶다가도 그래도 미련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그래, 알았어, 네 알아서 해. 뭐 갖고 싶은 건 없어?”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런 직후, 갑작스레 공장장이 직 원들을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을 들었고, 그는 공장 내 강당으로 향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나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기 업가가 각각 한 명씩 공장에 온다는 것이었다. 아시아 정복의 야욕을 품었지만, 수 년 전 연합군 측에게 패배한 이후 바닥부터 시작한 일본 기업가의 방문이라 하니 몇 몇은 웃으며 비꼬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와 꽤 관계가 깊고, 어려운 관계인 미 국의 기업가가 온다고 하니 이내 현실을 직시한 듯 다들 웃음을 멈추고는 공장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에 바빴다. 정욱이 집에 들어오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마을 청년과 그의 양친이 마당에 서 그를 반겼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이전부터 순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한 소년이었다. 동네에서 안 보인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전부터 비범했던 머 리로 서울로 유학을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똘똘한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멍한 얼 굴로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라. 정욱은 무심한 얼굴로 그의 인사를 받았고, 여러 가 지 얘기가 오가는 사이에 정욱은 불편하게 앉아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얼굴을 살짝 들어보니 순이의 옷은 그 청년이 마련해 준 것만 같았다. 언제부터 둘의 사이가 저 렇게 깊었을까, 왜 나한텐 말을 하지 않았을까, 혼자 고민하며 정욱은 꾸역꾸역 저 녁밥을 먹었다. 아직 조선, 아니 대한제국은 가난하고 작은 국가였지만, 그 악착같은 끈기를 지닌 국민성 덕분에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신문에서는 대한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