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의리 (義理)
오
래된 친구 중에 스티븐 코스텔로라는 보스턴 출신의 학자가 있다. 90년대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가 운영하던 아태재단 워싱턴 사무소에서 아내와 함께 일한 인연으로 알게
된 친구다. 1992년, 북한이 NPT(핵무기확산조약) 탈퇴를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면서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총재는 주미 대사관을 통해 미국의 행정부나 의회에 야권의 의견을 교환할 수 없어 아태재단
워싱턴 사무소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설득하였고 그 일을 스티븐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1994년, 더는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 수 없었던 백악관은 북한의 주요 핵시설을 미사일 공격으로
제거하기로 하였다. 한반도가 실제 전쟁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의 자서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스티븐 코스텔로는 국무부, 백악관, 국방부, 의회를 뛰어다니면서 전쟁만큼은 안 된다는 김대중
총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워싱턴 정가의 긴박한 상황을 한국에 전했다. 그런 일련의 노력 끝에
편집인 장현석
김대중 대통령이 내셔널 프레스 센터에서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보내라"는 역사적인 건의를
하게 되고 그 덕에 한반도에서 벌어질 전쟁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업적이 모두
당대의 주인공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티븐이 발품을 팔아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더라면 과연 그런 명쾌한 전략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스티븐 코스텔로의 숨은 역할은 컸다.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아태재단 사무실 문이 닫히면서 그는 워싱턴의 어느
정책연구소로 자리를 옮겼고, 필자 역시 언론사를 떠나 뷰티 서플라이업에 입문하게 되었다.
몇 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던 스티븐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은 뒤
남북문제가 다시 냉소적으로 바뀌고 있고, 북한은 다시 핵 개발을 시작한 것 같다면서 한반도
정세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거의 매일같이 외교적 수단으로 한반도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써댔고, 온갖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월급도 받지 않는 일이었는데도 한국을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 이어졌고, 그런 그를 못 본 척할 수
없어 필자도 그 뒤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의 옆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여야 5당 지도부가 초당적인 대규모 외교단을 꾸리고 워싱턴을
방문했다. 의회 대 의회 외교라는 새로운 형태의 외교전을 펼치기 위함이다. 북미회담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던 미 의회를 상대로 한국인들이 초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는 분명한
의견을 전달했고 효과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행사장 곳곳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티븐이 발품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의리(義理)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김대중이라는 지도자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비를 털어가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30년째 변함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마음이 바로 진정한 의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
사람으로서 한번 맺은 약속이나 각오를 쉽게 저버리지 않고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는
마음이 바로 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코스텔로는 죽는 날까지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한국의 참 귀한 친구다.
필자는 최근 뷰티 서플라이를 위해 조합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했다. 이제 겨우 한발 뗄 수가
있게 되어 한숨 돌릴 수 있나 싶었는데 예기치 못한 내부적 문제에 직면해있다. 그렇지 않아도 피로가
누적되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도망칠 좋은 기회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변함없는 그의 열정을 보면서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과연 나에게 의(義)는 무엇이고,
실천해야 할 리(理)는 무엇일까. 깊은 밤잠은 오지 않고 고민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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