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윤 소영 | 단편소설
하고
와
“잘하고 와.”
그 말이 싫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고, 비꼬려는 태도는 더욱 없었다.
그냥 내 마음이 꼬여버린 거다.
“그 말 그만 좀 해. 내가 꼭 잘해야 돼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거짓말하지 않겠다. 차라리 후련했다. 목을 막던 가래를
뱉은 것 같았다. 서로의 표정이 굳었고 그 후로 내 책임인 것이 확실한 정적이 흘렀
다.
“잘하는 게 쉬운 줄 아시냐고요.”
“그만해.”
마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만하라고 했다. 그 때 그만해야
했다. 입 밖으로 뱉는 말과 일기장에 써내려가는 말은 같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버린 말이었다. 주워 담을 수도, 서로의 기억에서 지울 수
도 없었다.
“언제는 술 먹고 들어와서 일하기가,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그래놓고 나보
고는 나갈 때마다 잘하라는 이유가 뭐예요? 난 안 힘들까봐? 그리고 언제부터 제
가 하는 거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는데요? 그리고 나는 뭐 잘하기 싫어요? 제가 아
무리 발버둥 쳐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제 위에 있었던 것 같은 애들이 수두룩하다고
요. 그 기분을 아세요?”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건넨 말에 양 손에 칼을 쥐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앞뒤조
차 맞지 않는 말이었다. 말하면서도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하긴, 내가 무슨 검객도
아니고 어떻게 칼을 계산해서 휘두르겠는가. 그렇게 아직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이
터져 나왔고, 그 말들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울렸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말이 다른 사람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보다 마치 입력된 부호를 출력해내
는 어느 기계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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